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모자 Sep 14. 2023

정작 쓸데 있는 대화는 안 해

외부에서 우리 회사로 새로 온 임원이나, 외부에서 우리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평가들을 진행하는 평가위원 등 외부인들이 우리 회사를 보고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직원들끼리 왜 이리 사이가 안 좋냐.' 입사하고 1년 지나니까 나도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본사로 들어오고 조금 지내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끼리끼리 어울릴 뿐, 업무적이든 비업무적이든 직원들끼리 서로 대화가 별로 없구나.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적었고, 내가 먼저 다가가기에는 뭔가 벽이 높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직원들을 관찰해 봐도 사무실 내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늘 어울리는, 몇몇 친한 직원들과 자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알게 모르게 직원들끼리 서로 벽을 치고 사는 건가 싶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회사를 다니니까, 나도 조금씩 벽을 치게 되었다.


근데 대화는 별로 없어도 보는 눈은 참 많다. 한때 일이 엄청 많은 적이 있었는데, 점심때 병원을 몇 번 갔더니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병원에 자주 다니는 것 같다는 소문이 내 귀로 들려왔다. 단순 감기, 장염 같은 것들 때문에, 때로는 혼자 밥 먹고 싶어서 뻥친 것들이었는데, 과로로 되게 아픈 사람처럼 이미 포장이 된 상태였다. 나야 그런 소문이 반갑긴 했지만(?), 항상 어디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소름이 끼쳤다. 또, 언제 한 번은 열심히 일한 거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이 적은 것 같아 현타(?)가 와서 사기가 떨어진 채로 회사를 다니던 때도 있었다. 기운도 없었고, 재미도 없었고, 의욕도 없었는데, 이전에 비해 내가 의욕을 잃은 것 같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소문이 또 들려왔다. 누구에게 하소연한 것도 아닌데, 표정을 읽기라도 한 건지, 태도에서 티가 나는 건지, 나를 꿰뚫어 보고 판단하는 직원들이 또 어디엔가 숨어 있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회사 생활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 뜻이 와전돼서 오해를 사는 건 참 쉬운 일이겠구나 싶었다. 혼자 하는 행동을 보고도 나를 멋대로 판단하는데, 말하는 건 더욱 판단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입을 웬만해선 닫게 되었다. 개인적인 얘기는 최대한 삼가고, 일적인 얘기도 필요한 만큼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런 생각을 다른 선배직원들도 예전에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별생각 없이 한 말이나 행동을 보고 다른 직원들이 뒤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곤 했을 것이다. 별다른 피해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생각지 못한 정신적 피해를 겪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먼저 다가가고, 말 걸고, 관심을 갖는 분위기도 아니면서 뒤에서는 활발히 떠드는 걸 보고 경험적인 방어기제가 생겼을 것이고, 회사에 대한 실망감도 가졌을 것이다. 입을 닫는 게 더 낫다면, 누구라도 입을 닫고 말을 아낄 것이다. 직장 내 인간관계에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소극적 소통문화도 우리 회사의 큰 문젯거리이다. 우리 회사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가고, 어울리려고 하는 문화의 정반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갑질을 안 하면 다행이지, 후배를 챙겨주거나, 업무를 잘 알려주거나 하는 친절하고 따뜻한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고, 알아서 성장하라고 방임하는 문화와 가깝다. 그걸 보고 배우며 살아온 직원들은 자기 후배한테도 그대로 똑같이 행동한다. 챙김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남을 챙겨주지도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꼭 알려줘야 하는 중요한 업무만 알려주고, 나머지 업무와 회사가 돌아가는 시스템은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니, 입사 초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회사를 다닌 직원들이 업무 역량이 높을 리가 없다. 그리고 혼자 알아서 배우는 똑똑한 직원들은 진작에 이직해서 도망간다. 선후배 간 업무 전수와 교육이 안되니, 전체적인 평균이 하향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직렬 간, 직급 간 소통도 피하게 만든다. 업무협조든 관계지향적 대화든 사무직과 기술직 등 직렬이 다른 직원 사이 또는 선후배 사이에 다양하고도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서로의 업무에 대해 잘 몰라서 중간중간 나사가 빠진 것처럼 업무 프로세스가 삐걱대서 성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 협업 또한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중간중간 실수도 생기고, 소통 오류도 생기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게 되어서 성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게 된다. 거기에 직원들끼리 친하질 않으니 협업 자체도 꺼리게 되고, 방어적으로 서로 반응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사일로(Silo) 조직이 되어서, 자기 업무만 잘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문화가 형성된다.


앞에서는 거리를 두며 대면대면하고, 뒤에서는 끼리끼리 쓸데없는 얘기들이나 하니, 정작 쓸데 있는 대화는 부족하다. 기획, 재무, 판매 등등 다양한 기능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엔진 돌아가듯이 성과를 창출하는 게 회사인데, 직원들끼리 소통이 안되면 삐걱삐걱 쿵쿵대며 엔진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저기 부품끼리 상충되어서 부딪힐 테니까. 과도하게 사적인 대화와 상대방에 대한 간섭은 필요 없다. 서로에게 업무적으로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고받고, 때로는 적정선의 개인적인 얘기도 하면서 친목을 다지기도 하는 것. 대신 서로에 대한 쓸데없는 판단을 줄이고 평판놀음을 최소화하는 것.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직원들끼리 화합되는 좋은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텐데,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다들 없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현재의 삭막해진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증거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변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이전 09화 난 상급자고 넌 갑질 피해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