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모자 May 06. 2024

지역민이 빠져있는 평화누리특별자치도

공감과 정치 사이

공모전은 외부인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어서 활용하기 위해 추진하는 의견수렴 행사이다. 조직 내에서 매일 근무하다 보면 외부 인식에 둔해지기 마련이고, 틀에 박혀서 업무를 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쉽지 않다. 물론 아이디어를 고민할 시간도 업무 하느라 충분하지도 않다. 그래서 외부 사회의 공감이 필수적이면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공모전이라는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곤 한다.


명칭 공모전은 특히나 사회여론의 공감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외부의 시선이 가장 먼저 쏠리는 곳이 이름이다. 회사든 사람이든 지역이든 이름을 가장 먼저 인식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름이 어떻게 인식되기를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이름을 공모하는 경우엔 해당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가장 중요하다.


경기도에서 경기북도, 남도로의 분도를 현재 추진하고 있는데, 경기북도의 새로운 명칭에 관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고자 공모전을 최근 경기도에서 진행했다. 전체 국민이 경기북도에 어울리는 새로운 명칭을 제안하고, 전문가 심사 및 대국민 투표를 통해서 그중 우수한 아이디어를 선정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평화누리특별자치도'라는 명칭이 대상을 수상했다며 5월 1일에 대국민 보고회까지 개최하였다. 전국적으로 경기북도의 새로운 명칭을 홍보하자, 여러 언론보도가 나왔고 이를 본 경기 북부 지역민들과 타 지역 국민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평화누리라는 명칭에 황당한 기색이 여력 했다. 공모전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가 언론을 통해 갑자기 알게 된 경우가 많았고, 평화누리라는 명칭에 대한 부정적 의견들도 언론과 SNS를 통해 함께 표출되었다.


공모전 진행 절차는 일반적인 공모전 진행 절차와 비슷했다. 여러 아이디어를 대국민 상대로 접수받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평가위원으로 위촉하여 1차 평가를 통해 예선 통과작을 일부 선정하고, 대국민 평가를 통해 최종 우수작들을 선정하는 것. 여타 공모전들이 진행했던 방식과 유사했고, 그래서 사실 공공부문의 공모전 진행에서 발생되는 부작용이 이 공모전에서도 발생되었다.


대체로 공모전 내 외부 평가위원은 임원진이나 부서장 등 간부들의 관련 분야 아는 사람, 건너 건너 안면이 있는 사람을 불러서 위촉을 하곤 한다. 공모방식을 통해 위원 풀(pool)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장래 본인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유명 기관이나 공모전이 아닌 이상은 일반적으로 지원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모를 하든 안 하든 인맥을 동원해야 한다. 분야만 좀 맞는다고 판단되면 아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중복해서 동원하기 때문에 외부 평가위원은 대체로 기관에 옹호적인 사람들이다. 기관의 의견을 웬만하면 반영해 주고, 기관의 지향성과 본인의 가치관이 맞는 경우도 많다. 조직에서 계속 불러주는 전문가는 아무래도 조직 내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따져봤을 때, 사고방식이 회사와 비슷하거나, 성품이 원만하거나, 연관된 전문성이 높은 사람이라서 자주 부르게 된다. 쉽게 생각하면, 위촉하면 별일 없이 일이 마무리될 것 같은 사람들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임원이든 일반직원이든 선호하니까 그렇다. 좋게 좋게 별일 없이 하루하루 일을 쳐내면 만사 OK인 것이 공직사회의 분위기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외부위원들을 불러서 공모전 평가위원회 등을 개최하면 지역사회 의견과는 상관없이, 기관에서 원하는 방향대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평가방식도 기관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끔 자체적으로 구성하고, 평가위원들은 기관에 우호적이기까지 하니, 해당기관의 기관장이나 고위 간부들의 생각에 맞춰서 심사가 진행된다. 이러면 지역사회 의견과는 상관없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위촉한 전문가가 지역사회를 대변하는 위치의 사람인 것도 아니고, 외부 평가위원을 수십 명씩 다양하게 위촉하는 것도 대부분 아니어서, 외부에서 전문가를 소수 모셔오는 방법만으로는 충분히 외부의견을 담을 수 없다.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밀실평가로는 지역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


그렇다고 최근 연금개혁 의견수렴처럼 일반인을 여러 명 섭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대국민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것인데, 참여인원이 너무 적었다고 생각한다. 11만 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설명자료를 통해 경기도가 공개했는데, 경기도민이 천만 명이 넘고, 심지어 대국민 투표로 진행했는데 11만 명 참여는 너무 적은 인원이 참여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경기도민의 10%는 참여를 하게끔 해서 충분히 지역의견을 수렴했어야 하지 않을까. 온라인 투표를 경기도민에 한해서만 진행을 하든지, 아니면 공모 참여를 경기도민으로 한정해서 진행하든지 해서 뭔가 지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반영하려 했다는 의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온라인 의견수렴은 적은 예산으로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해당 공모전 전용 페이지부터 지자체에서 자체 운영하는 소통 플랫폼, 기관 공식 SNS 등 다양한 소통채널을 활용해서 투표참여를 독려하면 된다. 참여인원 대상으로 추첨이벤트를 진행해서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고, 각 소통 채널에 접속해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해도 되고, 아니면 투표참여 채널은 하나만 운영하고 다른 소통채널들은 투표참여 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게 링크연결만 시켜놓아도 된다. 홍보와 참여독려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다 가능한 일이다.


신분증의 주소가 바뀌는 일인데, 해당 당사자들이 선호도 투표에 대부분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바뀔 새로운 이름을 공표한다면 저항이 강할 수밖에 없다. 1차 심사에서 뽑힌 10개 명칭 중에서 마음에 드는 명칭을 온라인으로 투표하는 방식이었을 텐데, 경기도민 상대로 좀 더 긴 기간 동안 홍보와 투표진행을 해서 참여율을 더 높였다면 인터넷상에서 '이런 공모전을 진행하는지도 몰랐다', '북한도 아니고 평누도가 무슨 명칭이냐'는 말들이 이번보다 적지 않았을까 싶다.


이해당사자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의 의견은 더 많이 반영되어야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탈이 없다. 정책이 자신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자신의 의견과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행동이다. SNS상에서 표현되는 단순한 생각부터 기관에 직접 제기되는 민원까지, 불만의견보다 일 잘한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더 많이 듣고 싶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외부 의견수렴 과정에 더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