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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Apr 29. 2024

사업 과유불급의 법칙

때로는 적당함의 미덕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며칠 전, 주문제작 케이크를 수령하러 간 적이 있었다. 수령하기로 예약한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주문이 많이 밀려있다며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첨에는 몇 분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수령이 가능했다. 아무리 주문이 밀려있다 한들, 한 시간은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맛있고, 퀄리티가 괜찮다고 해도,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들었다면 마음속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손님 입장에선 개인의 시간이 소중할 것이기 때문에 너무 많이 기다리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만족도가 떨어지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신속한 서비스 제공은 타 업체 대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역량이다.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는 업무수행과 관련해서 신속성, 충족성(전문성) 등 조직의 업무역량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문항이 있다. 고객유형에 따라 문항 내용이 바뀌긴 하겠지만, 해당 기관이, 쉽게 말해서,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문항 유형이 여러 개로 나눠져 있지만, 서비스 제공 과정과 결과 측면의 문항들은 결국 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객 입장에서 일을 잘한다고 인식되는 기관이 국가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의 업무수행 신속성이나 전문성은 전사적인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만족도 조사가 특정 업무분야에 관해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 업무 프로세스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면 서비스를 기획해서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그 과정이 해당될 것이다. 이외에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같이 협업하는 협력사도 고객이라고 정의해서 협력사를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계약체결 등 서비스 생산 준비부터 협업이 끝난 후의 대금 지급까지의 과정이 해당될 것이다. 어떤 고객 유형이든 서비스를 만들고 팔기 위해 만나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고객 접점들을 살펴봐야 한다.


대체로 기업들이 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도 그렇지만, 일거리를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일이 많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좋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생산자 입장에서 경영을 바라보는 관점이고, 참 오래된 사고방식이지만 아직까지도 두루 통용된다. 고객만족도를 높이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생산자 관점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업을 새롭게 기획해서 여러 가지를 창출해 내면 조직 입장에서는 기존 업무와 함께 일거리가 더 늘어나기 때문에 업무 부하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인력과 자본을 적절하게 공급한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많은 회사들은 그에 적합한 투자를 충분히 하지 않는다. 대체로 기존 인력들에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면 전사적인 업무처리가 서서히 느려지게 된다. 기존에 하던 업무도 신규 업무를 쳐내야 하기 때문에 점점 소홀히 대하게 된다.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개별 업무들이 완료되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을 늘린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산력에는 체력적인 한계가 있다. 매일 8시간씩 일했다가 12시간씩 일한다고 4시간 더 일한 만큼 업무량이 그대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업무효율은 점점 더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업무량과 업무처리능력 간의 균형이 중요하다. 처리할 수 있는 양에 비해 업무량이 너무 많다면 점점 더 업무처리속도가 느려질 뿐이다. 느린 서비스 제공은 고스란히 고객만족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일을 더 많이 해서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신뢰가 깨짐으로써 고객을 잃게 되어서 발생하는 수익 감소가 더 뚜렷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객만족도가 떨어지면 고객이 점점 더 떠나가기 때문에 일을 더 많이 기획하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뭐든 과유불급인 법이다. 조직의 역량에 비해 너무 많은 수익을 욕심내면 결국 고꾸라지게 된다. 빨리빨리 일하라고 다그치고 푸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게 무리하게 요구한다고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만 하진 않는다. 근로자들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차라리 업무 효율성이라도 높이려는 노력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하지만 매일매일 업무에 치이는 환경에서는 효율성을 높일 만한 방안을 마련하기도,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 방안을 고민할 시간, 추진해 볼 시간 여유가 없이 하루하루 정해진 업무를 하기 바쁜데 어떻게 효율성을 높이겠는가.


내가 다니는 회사도 하루가 다르게 이런저런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조직 내에 인력 부족, 전산시스템 미흡 등 산재된 문제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해결하진 않고, 왜 이리 일만 만들어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존 업무로도 전체적으로 버겁기 때문에 쓸데없는 업무를 없애가면서 새로운 사업을 기획해야 하는데, 사업을 만들어내기만 하고 있으니 전체적으로 업무 부담이 더 강해지고 있다. 그런 경향이 반영이라도 된 건지, 작년도 고객만족도조사 점수가 하락했다. 업무 효율성이 높은 것도 아닌데 업무만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니 처리 속도가 느려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대금지급이 느리다고 협력사에서 민원이 종종 들어오기도 한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닌데, 옛날 조직문화가 강한 회사답게 그런 균형 잡힌 인식은 윗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지나친 욕심이 제 살을 깎아먹을 텐데 말이다.


고객만족도는 기관의 업무역량과 장기적인 비전을 외부로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이 해야 할 일을 빠르게 딱딱 해내고, 고객이 원할 만한 서비스를 기획해서 제공하는 건 만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하고, 이는 조직의 경쟁력이 되기도 한다. 무조건 사업을 늘린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임원들처럼 고객 접점과 거리가 멀게 일하는 직원들은 회사의 업무량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전사적인 업무량 조절을 위해 고객만족도 수준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계속 승승장구하려면 적당히 여유를 가질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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