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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Jul 01. 2024

난 상급자고 넌 갑질 피해자야

며칠 전에 직원 한 명이 또 관뒀다. 젊은 직원들, 하위부터 중간까지의 직급에 해당하는 인원들이 주기적으로 퇴사하고 있다. 출신이 신입이든 경력이든 차이는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퇴사하는 인원이 늘어날 뿐이다.


우리 회사2년에 한 번씩 직장 내 괴롭힘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전부터 갑질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언론에 노출되다 보니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본인이 당했거나 남이 당하는 걸 목격한 제보가 매번 줄줄이 쏟아진다. 폭언, 신경질, 불합리하고 과도한 질책 등 다양한 스토리들이 보고서에 적힌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줄어들 줄 알았지만, 직원 간 괴롭힘은 여전하고, 경영진이 행하는 갑질이 더욱 늘고 있었다. 조사라도 하면 다들 조심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씁쓸하다.


괴롭힘을 호소하며 그만두는 직원이 매년 발생했다. 한 직원은 같이 일하는 직장선배가 힘들어서 관뒀다. 선배가 본인 기분에 따라 갑자기 욱해서 화내고, 지나치게 질책하는 못된 습관이 있었다. 툭하면 화를 내고, 중요치 않은 사안에도 강하게 신경질적으로 질책하니, 위협감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느끼다 못해 결국 관둔 것이었다. 주말이나 퇴근 후에 연락해서 업무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갑질도 이루어졌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후배를 대했을까 싶다. 어떻게 부려먹어도 상관없는 자기 노예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자기보다 한참 밑에 있는 직원이니까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의식이 기저에 깔려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직원은 나도 업무적으로 몇 번 부딪힌 적이 있었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화부터 내고, 협조하지 않겠다니, 외부민원을 나에게 넘겨버리겠다니 등 협박조로 압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화를 할 때마다 내가 자기보다 후배이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의도가 느껴지는 인간이었다. 같이 일하던 직원이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다른 어떤 직원은 사회적 약자 전형으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차별을 조장하는 폭언을 듣는 등 고압적인 괴롭힘을 당했다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한 후 퇴사를 했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우대 전형으로 들어온 직원이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자, 부서장이 본인 입장에서는 사회적 약자 전형이 회사를 쉽게 들어오는 전형이라고 생각했는지, 사회적 약자 전형으로 쉽게 들어왔다고 일을 이 따위로 하는 것이냐 등 다양한 폭언을 행했다. 단지 업무역량이 본인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상명하복 하지 않고 다소 본인에게 따진다는 이유로 부서장의 지위를 이용해서 비난하고 모욕한 경우였다. 그 직원은 괴롭힘 신고 후 연가 등을 활용해서 회사를 몇 달 동안 나오지 않다가 결국엔 퇴사했다. 그런 사건을 터뜨리고 나서 회사를 계속 다니기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규모가 작은 회사여서 분리 조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마주칠 수 있다. 뒤에서 돌아다니는 소문과 부정적 평판도 신경 쓰였을 것이다. 주변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도 않았다. 그 부서장이 나쁜 사람이다, 잘못한 거다 등 같이 편들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면 그 지지에 힘입어 계속 다녔을지도 모르지만, 같이 욕해주는 직원이 거의 없었다. 불똥이 본인에게 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부 직원은 이 기회에 차라리 퇴사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업무역량이 부족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 퇴사한 직원에게 평소에 무심하게, 그리고 냉랭하게 대했었다. 후배직원을 챙기는 직원이 많이 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는, 직렬이 다르고, 부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협조해 주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선배들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본인 일을 잘하면 될 뿐, 타 부서 협조는 잘해줄 필요 없다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후배직원들에게도 전파하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심술 맞다고 생각했다. 다 회사 일이고,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협조요청인데, 본인만 잘하면 된다니. 회사에서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는 직원들이 그러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직렬끼리, 부서끼리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오해가 쌓이다 보니 점점 더 직원들이, 각 부서들끼리 관계가 나빠졌고, 서로 고립되었다. 내 눈앞에 있는 일에만 신경 쓰는, 공조직의 전형적인 문제라는 '사일로' 조직이 되어버렸다.


취업이나 이직할 때 연봉, 복지가 중요하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돈 벌러 가는 곳이 직장이니까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점점 더 그 중요성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다른 요소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조직, 대기업 등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던 조직의 퇴사율이 점점 더 올라가는 맥락과도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돈도 돈이지만, 이제는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만족도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요즘도 자주 쓰는 '워라밸'. 일과 가정의 균형은 사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해진 근무시간 내에 다 끝낼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양만 일하고 싶다는 욕구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또 요즘 중요도가 점점 올라가는 요소 중 수평적 조직문화도 있다. 조직문화가 수평적이라는 것은 결국 직원들이 서로 편하게 소통할 수 있고, 상명하복 문화가 약해서 괴롭힘 당하는 것 없이 안전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고 힘없는 존재이기에, 마음 편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뭔 대단한 개념이 아니다. 그냥 인간답게, 만족스럽게 조직에서 근무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근로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고객이 만족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해 낼 수 없다. 툭하면 퇴사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채워지는 행태는 조직역량에 불필요하게 구멍이 날 수 있는 문제이다. 갑질과 경직된 분위기 때문에 모두가 자기만 생각하고, 방어적으로 자기 일만 한다면, 협업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부가가치를 내다 버리며 정체하는 회사가 될 뿐이다. 그런 정체하는 회사에서 무슨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낸다는 말인가.


채찍질하면서 일 시킨다고 원하는 결과물이 매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입장에서 원하는 성과가 만들어지려면 결국 직원들이 노력해야 한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게 하려면 연봉 등 보상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의 정신적인 만족도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무언가 양(+)적으로 제공하는 차원보다 조직 내 부조리, 불편, 스트레스 등을 제거하는 음(-)적인 직원만족도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신적 만족도를 높이는 조치가 선행된 후에 물질적 보상을 늘리는 방법이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위협을 느끼고, 내가 다른 직원에게 공격당한다고 느끼는 상황이 지속되는데 어느 누가 계속 조직에 남으려고 하겠는가. 괴롭힘 신고를 하든 안 하든 결국 피해가 쌓인 채로 조직을 떠나게 되어있다. 이런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 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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