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대학생들의 술문화가 변하고 있다, 대학상권이 망하고 있다 등의 뉴스기사를 가끔씩 접하곤 한다. 내가 대학 다닐 때처럼 저녁만 되면 술 마시고 숙취에 괴로워서 다음날 아침수업 자체휴강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이제는 바뀌고 있는 듯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술을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거나, 아예 안 마시는 경우가 늘어나서 대학 근처 상권이, 특히 술집들 위주로 침체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면 음주문화가 정말 빨리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대학 저학년일 때만 해도 마시는 분위기였는데, 그 직후부터 바뀌기 시작했으니까 10년 좀 안 돼서 완전히 바뀐 것이다.
확실히 옛날의 부어라 마셔라 문화가 조금씩 옅어지고, 술을 마시더라도 주량껏 마시거나, 아예 술을 안 마시는 만남이 늘고 있다고 경험적으로도 느끼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더욱 뚜렷하게 변화가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세대는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술을 자주 마시는 분위기인 듯하다. 그래서 선임직원들의 입김이 센 우리 회사는 젊은 직원들이 최근에 많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료애를 돈독히 하고 친목을 도모할 때 술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누가 술을 강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아직도 술을 강요하는 직원들이 많은 게 우리 회사의 현실이기도 하다. 집단주의를 견고히 하고, 선후배 동료 간 우애를 다지는 데에 술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많아서 회식 때마다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곤 한다. 끊임없이 가득 채워지는 잔, 안 마시고 있으면 마시라고 권하며 술잔을 일부러 부딪히기도 하고, 어? 안 마실 거야?라고 말하며 꼬장을 부리기도 한다. 술에 취한 채로 친한 척하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곤 하는데 대부분 혼내는 내용이거나 잔소리이다. 소리 지르면서 진상짓을 하거나, 술을 핑계로 막말을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자신의 감춰진 본모습을 드러내는 소통방식이 팀워크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그냥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일지도.
난 술을 거의 못 마신다. 조금은 마실 수 있지만, 괜히 조금이라도 마시면, 술은 마실수록 늘어나는 것이라며 강요할 게 뻔해서 아예 안 마신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대학 다닐 때는 어느 정도 마실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소화력이 떨어졌다. 태생적으로 알코올 소화를 못하는 체질인데, 나이가 들면서 더욱 소화를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잠에 들었지만, 이제는 얼굴이 빨개지기 전에 속이 되게 더부룩해진다. 가스가 가득 찬 채로 소화가 안 되는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술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소화불량이 생겨서 설사를 하곤 한다. 이런 현상은 알코올 소화를 못해서 그런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 이후로는 웬만하면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다. 마신다고 해도 예의상 몇 모금, 아니면 맥주 한잔 정도. 주는 술을 한 잔도 안 마시면 예의가 없다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서 사람 봐가면서 어떤 사람과는 아예 술을 안 먹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의상 한잔을 받곤 한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과 회식 등의 술자리를 함께할수록 그렇게 예의를 차리게 되는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이상하게도, 술을 못 마신다고 말하면서 술을 안 먹는 내가, 술 마시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술은 마시면 조금씩 늘어난다고 믿어서 그런지, 안 마시면서 버티는 모습을 직원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는 태도처럼 바라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직접적으로 나에게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 맥락상 느껴지는 그 분위기와 불편감이 있다. 술을 안 먹는 사람은 동료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시각. 술을 못 먹는 체질은 술을 먹으면서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뭔가 조직 부적응자처럼 바라보는 것 같아 괜히 찝찝하다. 술을 몸에서 안 받아줘서 못 먹는 건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부적응자로 치부하는지, 회식자리에 참석할 때마다 억울하다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회식자리는 웬만해서는 다 참여한다. 술만 안 마실 뿐, 다른 건 전부 한다. 음주가무에서 음주만 뺀 거랄까. 성실하게 자리에 참여하고, 2차도 곧잘 따라가고, 분위기도 할 수 있는 만큼 잘 맞춰주려고 노력한다. 예의를 차리려고 하고, 동료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려고 노력하지만 뭔가 소외되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술을 마실 줄 아는 다수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 것 같다는 기분에 서글픈 적도 많았다. 술을 안 마신다는 이유로 다양한 만남에서 자연스레 배제되기도 했었으니까. 선배는 물론이고 후배들과 만날 기회도 술을 마시는 다른 직원보다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돼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술을 마시지도 않는데 껴달라고 무턱대고 조를 순 없었으니까. 그리고 다들 술자리 아니면 사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편이니까.
술을 안 마시니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회식이든 뭐든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의 자리를 대부분의 직원들이 꺼려하는 요즘 분위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상대적으로 더 많아졌다. 그렇지만 나 같이 술을 못 마시는 사람 입장에선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더더욱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아쉽다는 감정도 많이 느낀다. 친해지고 싶은 후배가 있어도 술 한잔 하자 같은 뻔한 명분이 없어서 교류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다. 젊은 직원들끼리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나 빼고 다들 친한 것 같아 소외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퇴근 후에 술 마실 것도 아닌데 만나자고 하면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퇴근 후 개인시간에는 회사사람들을 안 만나고 싶어 하는 직원들이 많아, 만남을 권하기가 괜히 조심스럽다. 외향적인 스타일도 아니어서 더욱 어려운 것 같다.
회식 자리에 꼭 술이 곁들여져야 하나 싶다. 술을 마신다고 하더라도, 못 마신다고 하는 직원에게는 권하지 않고, 1차에서 적당히 마시고, 술 좋아하는 분들끼리 2차, 3차에서 더 마시면 되지 않을까 싶다. 과음하기 싫어서 회식 꺼려하는 직원들도 많은데, 아무리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들, 식사자리는 체하지 않게 편하게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편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게 편한 애정을 품을 수 있으니까. 마시기 싫은 술을 억지로 마시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팀워크를 편하게 키울 수 있겠는가. 직원들끼리 마음이 공명하지 않으면 서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회사에서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선배들이 넓은 아량으로 현대사회의 분위기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만인이 원하는 가치를 무시하지 않고, 공감하면서 수용하는 것이 참된 선배 또는 동료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술과 함께하지 않아도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요즘 러닝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마음 맞는 직원들끼리 같이 러닝을 뛴다면 술 없이도 재미있게 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취미생활 하나 이상을 즐기는 추세이다. 하지만 취미를 회사동료 같이 잘 아는 사람 또는 잘 모르는 새로운 사람과 함께 즐기는 커뮤니티 문화가 여전히 활성화가 안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취미를 매개로 한 커뮤니티를 통해 친구뿐 아니라, 직장동료와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들이 다양하게 생겨났으면 한다. 그래야 나 같이 술을 못 먹는 사람들도 소외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술 없이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다채로운 사회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