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있는 회사들은 대체로 청년층에게 기피되는 경향이 있다. 기피 이유는 일반적으로 퇴사율이 높은 회사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이 비슷하게 거론된다. 연봉, 조직문화, 복지 등 구직자 입장에서 따져볼 만한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수도권에 있는 회사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근로문화에 대한 변화가 수도권 회사에 비해 느린 것이 주요 원인이고, 이는 단순한 인력구조에서 비롯된다. 인구도 전체 대비 적고, 산업구조도 대체로 단순한 편이라 많은 인재들이 본인의 꿈을 좇아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인구가 많은 지역에 수요도 많고, 인프라도 잘 되어있고, 고급 인력들도 모여있기 때문에 산업분야도 다양하게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지역 내 있는 일자리 외의 일을 하고 싶다면 거주지역을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에는 비슷한 과거를 가진 비슷한 사람들이 남아있는 편이다. 출신 대학이 대부분 겹치고, 그러다 보니 주변의 누군가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인 경우가 정말 많다. 직장 동료인데 학교 선후배이기도 한 사람이 한 회사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곳이 지방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하니까 공과 사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업무 차원에서는 사적 관계를 최대한 배제해야 하는 것이 공정성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인구 규모와 다양성이 적은 지역사회 내에서는 사람끼리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서 인간관계를 중시 여기다 보니 쉽지 않다. 특히 연령이 높은 세대일수록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은 편이다.
물품 구매 등 다른 회사와 거래할 일이 있을 때 이런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임원의 아는 사람, 지역 내 어떤 단체에서 협회장 같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등 정해진 규정이나 합리성에 근거한 비교검토에 의해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 업체와 거래를 하라는 압박이 전달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 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옛날 마인드를 들이밀며 사적인 관계에서 오는 개인적인 부탁, 때로는 강성민원에 의한 비합리적인 거래를 하는 것이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결과를 정해놓고 그럴싸한 논리를 만들어 근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번거롭기도 하고, 나중에 감사지적을 받을 위험성도 존재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더 경쟁력 있는 업체와 거래할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 자체를 날려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무를 하며 가장 어이없는 경우는 민원에 휩쓸려서 민원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지시받는 경우이다. 민원인이 공정하지 않은 방향으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서 본인의 이익을 챙기려는 것을 자주 목격했고, 높은 사람에게 민원을 제기할수록 더 잘 먹혀들어갔다. 예로 들어, 어떤 물품의 납품업체가 2개밖에 없고,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 2개 업체 중 한 군데가 임원에게 쫓아가서 그 기준대로 선정하면 본인들은 경쟁력이 떨어져 기회조차도 못 얻는다고 난리치고 항의한 적이 있었다. 정석대로라면 민원을 넣든지 말든지 정해져 있는 기준대로 선정해서 계약을 하면 된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런 원칙 준수에 대한 개념이 없으신지, 아니면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그런 건지,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그 민원인을 선정하라고 지시했고, 기존에 활용하던 기준을 그 민원인에게 유리하게 수정 적용한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선정될 것이라 예상했던 업체가 선정되었지만, 계속 적용해 오는 규정과 선정기준이 이미 있는데도, 읍소하고 화내는 민원인이 안타깝다는 이유로 특혜를 주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불만형 민원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리더들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고, 원칙이 쉽게 무너지고 무시되는 관습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공정의 길이 한참 남았다는 현실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불합리하다, 불공정하다 말하면서 자신만의 논리를 강조하며 본인의 이익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민원을 받아주고, 본인과 친구사이, 아는 사람, 선후배 사이 등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경쟁력 있는 업체를 건너뛰는 건 공정사회를 위해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툭하면 이 업체와 계약하라 저 업체와 계약하라 지시를 받으면서, 힘없는 실무자의 무기력함을 많이 느끼곤 한다. 지시를 불이행하면 인사보복, 폭언 등 나에게 불이익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이행하면 나중에 감사지적을 받든, 불공정에 관해 또 다른 업체에게 민원을 받든, 나에게 불이익이 떨어질 것이다. 사회 내 관계 다양성 부족이 많은 갈등을 결국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를 중시할수록 감정에 치우친 결정을 내리게 되고, 대체로 이런 결정들은 미리 정해져 있는 규칙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개인의 이기적인 의도가 잘 숨겨져 있기도 하다. 민원을 방지해서 개인적으로 편해질 수도 있고, 사적 관계라면 추후에 다른 이익을 본인에게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으니까. 요즘 세상에 뇌물을 주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소리를 할 정도로 과거에 비해서는 청렴해졌고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지방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겪는 일들을 지켜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루어야 좀 바뀌려나? 사회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후손 세대 때도 이렇게 흘러가려나? 인간은 원래 비윤리적인 존재인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