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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Oct 04. 2021

머나먼 숲을 보지 말고 가까운 나무를 봐라.

덜 피곤한 마인드셋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어렸을 때 듣곤 했었던 교훈이었다. 시야를 넓게 가지라는 의미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해왔다. 또한, 신문 기사나 논문을 읽다 보면, 어떤 현상에 대해 비판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근시안'이다. 근시안적인 방법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느니, 미래를 내다보지 못해서 손해를 봤다느니 등등 근시안적인 것은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미봉책이라는 인식이 글 곳곳에 묻어져있곤 한다. 시야가 좁고, 한 치 앞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고방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거시적인 관점을 가진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고자 늘 노력했다. 


그렇게 몇십 년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오면서, 최근의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이제는 지친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하나가 아닌 열을 바라볼 수 있고, 앞으로 발생할 일까지 예측할 수 있는 멋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한계가 찾아온 듯했다.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멋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기에 버거웠던 모양이다. 글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리에 들어오더라도 항상 불안했다. 내가 내용을 맞게 이해한 건지, 나의 주관이 설득력이 있는 건지 등 단지 글을 읽을 뿐인데 너무 많은 생각들이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읽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긴장되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내 뇌는 편히 쉬질 못했다. 일상 속에서도 나의 생각과 판단을 끊임없이 자기검열하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너무 지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 것이었다. 내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참 피곤하게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무슨 위인이라도 될 생각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매사에 진지하게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숲을 보고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할 필요가 있었다. 1이 아닌 주변의 것까지 합쳐 10에 관해 따져봐야 했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하나의 현상에 관해 더 많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질 필요가 있었다. 이는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뛰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일상을 파괴하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인데, 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위인'이 되려고 했나. 어떤 목표를 가지고 그렇게 생각의 굴레를 힘차게 쉬지 않고 돌려왔던 걸까. 이제 생각해보면, 목표 없이 허상을 바라보며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 허상은 아무 문제없이 무슨 일이든 척척해내는 '척척박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안정적인 삶과 성공적인 삶을 동시에 가지고 싶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허상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게 가장 문제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지나친 욕심을 품으며 자신을 갉아먹는 마인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순간도 편하게 쉬지 못하게 압박하는 사회 속에서 개개인은 오늘도 자기개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고, 공부를 하며, 생각을 해야 하는 삶을 살기 원하는 사회의 등살에 오늘도 피곤한 하루를 다들 보내고 있다. 쉼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필요하다. 거시적인 관점을 가진 미래지향적인 위인을 세상은 원하지만, 꼭 그런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나와 내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미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현재와 근미래의 삶에 관해 예측하고 집중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생각을 덜 하며 단순하게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이 이제는 나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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