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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Sep 22. 2021

순두부는 건드리면 부서집니다

강대강 스타일은 지양합니다

나는 말투에 예민한 편이다. 대화를 할 때마다 말투의 미묘한 변화를 느껴 상대방의 감정 변화를 읽곤 한다. 평온한 말투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변하면 금방 포착한다. 예로 들면, 자기 상사에 관해 얘기를 할 때 말투가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걸 보고, 상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등의 방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습관이 있다.


이런 습관은 대화를 할 때 상당히 도움이 된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쉬워서 상대방과의 접점을 찾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듯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불편한 점이 있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내가 너무나 예민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른 사람의 미묘한 감정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다 보면 업무를 하면서 피곤한 일이 많다. 직장생활은 눈치보기의 연속이며,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아예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예민한 성격보다는 둔감한 성격이 정신적으로 버티기 더 수월하다. 예민함 속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최대한 덜 예민한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의사 표현 안에 들어있는 감정, 생각을 알게 되면 아무래도 신경을 쓰게 된다. 예로 들어, 내가 부탁하는 일에 상대방이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해도 미묘하게 부정적으로 바뀌는 말투를 듣게 되면 마음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내 부탁이 거슬리는구나, 아무래도 귀찮은가 보다 싶어서 괜히 미안해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 누군가는 뻔뻔하게 할 수 있는 부탁일 수 있어도, 예민한 초식인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해야 하는 불편한 부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투를 통해 기분을 캐치하는 습관 때문에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첫 직장은 둥글둥글한 선배들과 쉬운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길 바랐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게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업무였고 상사가 나에게 바라는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상사는 호랑이 같은 성격이었다. 혼자 공부해보고 부딪히며 깨우쳐야지, 이것저것 질문을 해서 업무를 배우는 건 제대로 배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맘 놓고 궁금한 점에 관해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업무는 어렵고, 책임은 무겁고, 사람은 무서운 상황이었다.


특히 큰 문제는 상사와의 관계였다. 아무리 일이 어려워도, 신입으로서 부담스러운 책임을 맡게 되어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차를 사게 하고 편도로 1시간 걸리는 곳으로 갑자기 출근하라고 해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사와 소통 스타일이 너무 안 맞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참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고, 업무를 꽤 잘하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시키는 일을 곧잘 해냈고, 업무 결과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이 많지 않았다. 일을 해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상사는 욱하는 성격이었다. 왜 신경질을 내는지, 왜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될 만한 상황일 때 순식간에 말투가 변했다. 갑작스럽게 나오는 신경질적인 말투에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내가 왜 그런 말투를 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느라 바빴다. 나에게 갑작스러운 말투 변화는 심각한 일이었다. 갑자기 강하게 말투가 변했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의 감정도 강하게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감정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습관 때문에 갑자기 말투가 변할 때마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은 원래부터 강했는데, 상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더욱 강했다. 단순히 질문 하나를 안 한 것뿐인데, 때로는 단순히 질문 하나를 했을 뿐인데 상사가 왜 그렇게 신경질을 내고 화를 냈는지 이해하려 노력했다. 


나는 원래 신경질과 화를 당하고 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고, 내 직장생활 목표는 항상 나의 업무를 혼나지 않고 문제없이 무난하게 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열심히 공부했고, 군소리 없이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했었다. 혼나기 싫어서, 신경질적인 말투를 듣기 싫어서 상사의 신경질에 관해 늘 이유를 찾으려 했다. 초반에는 이유를 찾고 시정하며 잘 적응해나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쌩신입에서 그냥 신입이 되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경질을 내는 빈도는 더욱 잦아졌고, 나중에는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서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다다르게 되었다.


결국 상사와 면담을 하게 되었고, 관둘 생각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상사는 상당히 놀랬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서로 터놓게 되었다. 알고 보니, 느닷없이 나오던 신경질은 악의를 가지고 한 표현이 아니었다. 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더욱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오는 말투였다. 상사의 소통 스타일은 나와 정반대였다. 상사는 잘하길 바랄수록 더욱 강하게, 거칠게 푸시하는 스타일이었다. 무언가 깨달았으면 하는 점이 있으면 그걸 혼내면서 가르치려 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크게 혼날 일이 아닌 경우에 신경질을 냈던 것이었다. 


그게 나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로 다가왔던 것이다. 원래부터 목소리가 크고, 남성적이며, 말투가 퉁명스러운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신경질을 내며 버럭 화를 내기까지 했으니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나는 별거 아닌 일을 할 때도 혹여나 신경질을 내지는 않을까, 화를 내지는 않을까 겁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눈치 보며 말투를 살필 때마다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신경질적인 말투를 들으면서, 혼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나 같은 초식인에게는 잘했을 때는 칭찬, 못했을 때는 격려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상대방의 감정에 맞추려 노력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이미 인간관계에 관해 충분한 열정을 갖췄다. 업무를 잘 해내려는 마음, 동료들과 잘 지내려는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혼나면 주눅 들게 된다. 내 상사의 생각처럼 때로는 개기기도 하며 반발심에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지 집착하며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다. 예민한 초식인은 따뜻한 챙김을 받아야 한다. 모르는 점은 충분히 물어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업무를 수행하며 적극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그리고 강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열정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초식인은 부정적인 에너지보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욱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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