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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Dec 06. 2021

지방에서 떠나고 싶어졌다

색다른 관점에서 평범한 관점으로

나는 조용하고 나대지 않는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약간 관종이다. 어렸을 때는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었다. 지금은 정도가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개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눈에 엄청 띄지는 않지만, 지나가면서 한 번씩 쳐다볼 만한 그런... 조용한 관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조용하게 존재한다.


개성 없는 삶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개성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나만의 철학에서 유래한 믿음이다. 그래서 평소에 상식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일부러 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 '상식에서 벗어나는 생각들' 중 하나가 지방에 있는 공공기관으로의 취업이었다. 지방 이전 국가 공공기관이 아닌, 지자체의 출자출연을 통해 설립된 공공기관들에 취업하는 게 좋겠다는 믿음을 가졌었다. 남들은 규모가 크고 유명한 회사, 누구나 좋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했었다. 그런 회사들도 단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인턴으로 다녀보니 단점이 눈에 더 잘 보였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나에게 더 강하게 다가왔다. 전국 팔도를 여기저기 다녀야 한다는 것, 높은 연봉인 만큼 난이도 높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 등등 여러 단점이 내가 은근한 거부감을 느끼게끔 만들었다.


지방 공공기관에서도 기간제로나마 일을 해봤었다. 그곳에선 단점보다는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연봉 낮고, 인지도도 낮고, 직원수도 적었다. 문화도 지방에 있는 기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력 있는 인재라면 뭐하러 들어가냐고 할 법했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짧게나마 다녀보면서 사람들끼리 정을 느끼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이,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직원들 간의 분위기가 좋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업무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서로를 챙기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따뜻한 조직문화로 느껴졌었다. 일을 하는 동안 갑갑하고 답답한 느낌을 상대적으로 적게 느낄 수 있었다. 직원들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의지하면, 일하는 동안 감정적으로 덜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점이 강하게 장점으로 다가왔었다.


그 외에 다른 장점들도 여럿 있었지만, 지역 내에 터전을 잡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중요한 장점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지방 공공기관에 취업하겠다고 목표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취업을 하게 돼서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최근 회사에서 조직문화진단을 했는데, 대한민국 전체 평균보다 월등히 나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직문화가 상당히 경직되어 있고, 직장 내 괴롭힘 등이 만연해 있다는 의미였다. 나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보수적인 문화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다른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보수적이라니. 조직문화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나에겐 자괴감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직원 간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직원 간의 끈끈한 관계를 기대하고 입사했지만, 생각보다 그런 관계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각자도생 하기 바쁘고, 서로를 챙기기는커녕, 알아서 살아남길 바라는 분위기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요즘은 상식적인 생각이 옳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개성 있는 인생을 살 줄 알았는데, 물론 맞기는 하다. 하지만 개성 있는 인생이 꼭 바람직한 인생인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내 기대와는 다른 회사의 모습에 조금씩 실망하고 있고, 그 실망이 나의 사상에 대한 실망으로 변해가고 있다. 여느 취업준비생들처럼 남들이 좋다고 하는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평범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어야 했나 후회가 들기도 한다. 


요즘 문득, 지방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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