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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Oct 11. 2021

나는 원래 운전 안 해

초보운전인데 갖다 박아도 괜찮은가요?

운전은 하나부터 열까지 확실한 게 없다. 도로에서 주행을 하든, 주차를 하든 전부 감으로 해야 한다. 감으로 하는 일은 불안을 느끼기 쉽다. 초식인들은 확실하지 않은 일에 큰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은 100% 확실하지는 않다.


처음에 운전을 배우기 힘든 이유도 불안감 때문이다. 달리다 차선을 변경하는 차와 부딪히든, 주차장에서 옆 차 범퍼를 긁든, 사고 처리는 금전적으로 공포스럽고,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초보운전은 사고가 날 확률이 높고, 사고가 날 뻔하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 확률도 매우 높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기도 전부터 불안하다. 내 지갑과 마음을 고통스럽게 할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본인이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위험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언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웬만하면 운전연습을 피하려 하곤 한다. 주위에서 흔하게 장롱면허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불행을 피하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 때문에 그렇다. 나 또한 운전하기 싫다며 운전연습을 슬금슬금 피하곤 했던 사람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사고가 나서 고생할 때의 손해가 더 크게 와닿았다.


처음 운전을 하게 된 계기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회사생활 때문이었다. 운전을 할 줄 알아야 되는 직무를 초보운전이었던 내가 처음에 맡게 되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웬만하면 천천히 연습을 한 후에 회사 차를 끌고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운전을 안 하려고 했었다. 같이 근무하게 된 동기가 운전을 잘하는 편이어서 그 친구가 웬만하면 끌고 다니게끔 슬금슬금 피하곤 했었다.


그런데 내 상사는 동기가 여자여서 그런 건지, 계약직이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 동기에게 운전을 시킬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여자는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는 옛날 마인드가 머릿속에 쓸데없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몇 년을 차를 끌고 다녀서 능숙하게 운전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내버려두고, 나에게 운전을 줄곧 시키곤 했었다. 물론 강제였다. 자신은 운전을 하지 않는다며 딱 잘라 얘기를 했었다. 그러곤 키를 나에게 던지곤 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난 핸들을 잡을 때마다 땀이 찬 손을 부들부들 떨었었다. 운전석에 앉으면 모든 게 무섭게 느껴졌다. 실제로는 옆 차와 충분히 떨어져 있는데, 시각적으로 바짝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살짝이라도 부딪히면 바로 사고처리를 해야 한다는 공포에 앞차 옆 차와 멀찍멀찍 떨어져서 다니곤 했었다. 옆 차가 조금이라도 과격하게 움직이면, 혹여나 내 차를 칠까 봐 나도 과격하게 핸들을 꺾기도 했었다. 차 안에 있던 생수가 이리저리 우당탕탕 굴러다닐 정도였으니, 승차감이 얼마나 저질이었을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후진주차를 할 때는 방향감각이 없었다. 나는 차 뒷부분을 엉덩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엉덩이를 왼쪽으로 움직일지 처음에는 헷갈렸었다. 왼쪽으로 꺾다 오른쪽으로 꺾고, 앞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며 또 이리저리 엉덩이를 꺾어대는 모습이 누가 봐도 허둥지둥 초보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단지 개인적으로 충분히 연습을 한 후에 운전을 하길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사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행여나 내가 내뺄까 봐 고압적으로 운전을 시켰었다. 초긴장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보니, 할 때마다 팔목과 허리가 너무 아팠고 다리는 힘이 풀렸다. 운전을 한 날은 특히나 저녁에 피곤했었다. 누워서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겁이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불확실한 것에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운전은 불확실한 게 너무 많다. 갑자기 옆 차가 내 차선으로 튀어나올 수 있고, 우회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못 보고 칠 수도 있다. 소나기가 갑자기 내려서 앞이 잘 안 보이는 상황이 갑자기 닥칠 수도 있다. 운전석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차와 차 사이의 간격이 정확하게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실수도 해가며 경험으로 그 간격을 알아내야 하고 감으로 외우고 있어야 한다. 속도조절도 순전히 감각으로 이루어진다. 80km/h에서 브레이크를 얼마나 밟아야 60km/h가 될지는 순전히 감각으로 느껴야 한다. 그러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감이 떨어지는 날이라도 오면, 접촉사고를 낼 수도 있다. 그에 더해, 내가 막을 수 없는 사고도 존재한다. 신호대기 중에 갑자기 건너편 차가 나에게 빠르게 돌진해오는 경우 같이, 타인의 잘못에 의해 갑작스레 발생하는 사고는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나처럼 예민하고 여린 사람들은 애초에 불행이 나에게 닥치지 않길 바란다. 한번 불행이 닥치면 육체적, 심리적으로 너무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감정이 쉽게 내 몸에서 휘몰아친다. 고통을 아주 섬세하게 느끼기 때문에 위험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운전은 위험하기만 한 행동으로 다가온다. 핸들을 잡는 순간부터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운전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불안과 함께 자연스레 피어오른다. 그러다 보니 운전연습을 피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려면,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방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경우, 운전은 그냥 필수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중교통이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동차가 없으면 이동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힘들게 움직여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직장생활에서는 감수할 여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돈을 금처럼 생각하는 회사는 여유롭게 출장을 다니게끔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운전을 강요받게 된다.


위험을 수반하는 일에 큰 부담을 느끼는 초식인에게 운전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연습을 차근차근 천천히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강요를 안 하면 다행이지, 회사에서 배려를 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월급을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용기를 내며 운전을 배워야 한다. 이런 점이 삶을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용기를 내야 하는 것. 강제로 힘을 내야 하고, 안되면 되게 해야 하는 강박적인 시스템. 천천히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톱니바퀴를 이가 빠지도록 강제로 빠르게 돌리는 것 같아서 괴롭다. 그렇게 괴로움을 참아가면서 직장인의 삶을 유지해나가야 밥벌이를 하며 삶을 유지할 수 있다니. 인생이 참 빡빡하게 느껴진다. 단지 시간을 좀 더 달라는 건데. 천천히 연습할 조금의 여유를 원하는 것뿐인데. 이 정도도 허락해주지 않는 사회가 야속할 뿐이다.


초보운전 석 달 차,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운전이 공포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누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연습을 하곤 한다. 내가 원했던 여유를 내가 만들어냈다. 역시 내 인생은 내가 챙겨야 한다. 강하게 밀어붙여서 당차고, 실력이 좋은 사람을 만들어내려는 문화가 우리 삶을 각박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자기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며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차키를 던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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