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매일 쓰는 건, 매일 소재가 있어서가 아니다.
나는 최대 9시 이전에는 모든 일을 끝내려고 한다. 9시 이후에는 일과 관련된 모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영어 관련 라디오를 켜 두지도 않고, 쉴 때 보곤 하는 미드도 9시 이후 잠자리에선 보지 않는다. 나에게 완벽한 휴식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몸에게도 당연히 휴식을 줘야 하기 때문에 야식도 먹지 않는다!)
내가 실패하거나 제대로 무언가를 완성시키지 못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항상 애매하게 했었다. 한 가지 예로 대학교 시험기간에, 마음 한 구석에 공부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안고서 새벽까지 친구들과 도서관에 앉아 시간은 많이 들였지만 정작 제대로 집중해서 공부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 몸은 몸대로 피곤하고 공부는 공부대로 안됐다. 무작정 오래 앉아있는 게 능사가 아닌 거다. 그때부터 쉴 땐 쉬고, 공부할 땐 공부하고,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쉴 땐 제대로 쉬어야 일도 더 잘할 수 있고 더 잘 풀린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때문에 나는 하루에 무조건 일 끝내는 시간(9시)을 정해두게 됐고, 그 이후에는 더 강렬하게 쉬기 위해 많은 것들을 차단한다.
9시 이후에는 주로 친구들과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거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는다. 음악을 틀어두는 것도 필수다. 가요를 틀지 않고 명상음악이나 피아노 음악을 튼다. 불은 최대한 약하게 켠다. 그리고 12시쯤에 잠에 든다. 그러면 다음 날 7시쯤에 일어나게 되는데, 일어나서 가장 먼저 커튼을 걷는다. 그리고 오늘은 날씨가 어떨까, 햇빛은 어떨까, 또다시 밝은 아침이 왔구나 하는 생각들을 한다. 그 뒤 양치를 하고 가볍게 집 청소를 한다. 오늘 하루를 보내야 할 공간이니 아침부터 깨끗하게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혼자 살아서 그런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쓸고,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해두고, 향기 좋은 방향제를 뿌리는 것만으로 아침청소는 충분하다. 아침청소가 끝나면 10분 정도 명상을 하고, 30분 정도 가벼운 스트레칭과 맨몸 운동을 한다. 여기까지 끝내면 8시 반 정도가 되는데, 벌써 뿌듯하다. 하루의 시작을 깨끗한 성취감으로 맞이하는 거다. 그런 기분으로 아침을 먹으며 어제 있던 일을 정리하는 일기를 쓴 뒤에 (평소에는) 출근을 한다. 물론 내가 현재 있는 동티모르에서, 일하고 있는 학교가 방학이기에 요즘은 출근을 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출근을 하지 않는 대신 다른 어떤 사업을 맡아 그와 관련된 업무를 집에서 하고 있고, 영어공부를 하고, 글도 매일 쓴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다 아침에 배치한다. 의식적으로 조금 귀찮거나 하기 싫은 일들은 오전에(업무, 영어 독해와 같은 것들, 글 쓰기) 끝내려고 노력하고, 오후에는 주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미드로 영어공부, 책 읽기, 요리). 하기 싫은 일을 오전에 배치하는 건 나에게 정말 중요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먼저 하고 하기 싫은 일들은 이따 하자며 미루는 경우에 정말 끝까지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며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일은 그 하기 싫은 일들을 모두 끝낸 뒤에 하는 생활 패턴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침부터 하기 싫은 일을 할 만큼 인내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아침에 가벼운 청소, 명상, 스트레칭으로 성취감을 넣어준 후 진행하는 것이다.
(글 쓰기의 경우 현재 매일 하고 있고, 물론 좋아하는 일은 맞지만, 매일 글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쓰지 말까?’하는 날들이 있기 때문에 오전에 배치한다.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매일 쓰고 싶은 욕구가 들어서도 아니고, 소재가 매일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정해진 시간에 노트북을 열고 책상에 앉기 때문이다. 오늘도 노트북을 열어 키보드를 잡기 전까진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랐다.)
단순히 오늘의 To do list 만 다이어리에 적을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언제 할지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일들을 ‘해야 한다’ 고만 바라보기보다는, 그 ‘해야 하는’ 일을 잘, 꾸준히 해내기 위해서 그 외 다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잘 보면 좋을 것 같다. 하루에 영어공부를 5시간 하기로 정했다면, 그 5시간을 효율적으로 집중력 있게 해내기 위해, 다른 일들을 어떻게 끝내 둘 것인지 그리고 지치지 않게 컨디션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것들을 정해 보는 거다. 일들을 내 하루 속에 잘 녹여내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항상 해야 하는 일들만 생각해왔지, 여가시간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대부분 저녁 먹기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이 끝난다. 그러면 저녁엔 가벼운 산책을 하기도, 드라마를 보기도, 친구와 전화로 재밌는 수다를 떤다. 또 9시가 되면 침실로 향하고. 내일 또 오늘과 같이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위해서, 그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쉴 땐 푹 쉬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