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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Oct 26. 2022

13:30 출근 루틴

누군가 문을 힘차게 두드린다. 쾅쾅쾅. 이내 확 열어젖힌다. 끼익. 그리고 뛰어온다. 후다다닥.

아빠 일어나. 아빠 일어나!

우리 공주님이다. 내 방에서 따로 자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매일 아침 모습이다. 잠을 설치고 나면 아무래도 업무에 지장이 있는 것 같아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내와 잔다. 나는 예전에도 아침 알람은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딸아이가 이렇게 알람 역할을 하기에 더욱더 스마트폰 알람이 필요 없어졌다. 아이는 매일 한결같이 아내와 나보다 먼저 일어난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은 운동삘(?)이 아니다. 아무래도 어제 등 운동이 좀 무리였나 보다. 누워있기만 해도 배기는 바람에 진통제까지 먹은 상태다. 이런 날은 몸이 하는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 운동은 내일 해도 된다. 내일이 아니면 모레도 있다. 운동할 기회는 아직 최소 50은 더 있다. 아내와 아침을 먹으며 TV를 보기로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에 아직 확 끌리는 다음 작품이 없어 이리저리 둘러보다 정작 뭐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일명 넷플릭스병, 혹은 유튜브병에 걸린 것이다.


아무튼 그럭저럭 시간을 때웠으니 이제 출근을 고려한다. 별로 내키진 않는다. 오늘 특히 더 일찍 출근하기 싫은 이유가 있다. 밤 9시 반에 중국 상해에 있는 상무와 미팅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즉, 오늘 퇴근은 빨라야 10시가 넘어서야 가능할 터. 오전에 출근하는 건 못할 짓이다. 일단 책상 앞에 앉아 브런치 글이라도 좀 써보기로 한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끄적대던 글을 발행하지 못하고 이내 일어선다. 글빨이 안 서는 날이다. 글 보관함에 저장해 둔다. 나중에 이어서 쓰면 그래도 발행할 만한 글이 하나는 나오겠지 생각하면서. 11시 40분이다. 오늘따라 시간이 느리게 간다.


점심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아내를 찾는다. 원래 12시 반에 먹기로 했었는데, 심심해서 아내를 재촉해본다. 메뉴는 상관없다. 일단 먹는 행위를 통해서라도 내 빈 시간을 채우고 싶을 뿐이다. 밥을 먹으며 다시 TV를 본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참 다행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 방영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더 이상 방황하며 유튜브를 배회할 필요가 없다. 금요일 점심에 이 프로그램을 보는 건 아내와 나의 오랜 패턴이다.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배가 불러 밖에 걸으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행동 없이 마음뿐인 이유는 아직 여름이기 때문이다. 이곳 텍사스의 여름은 무자비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더운데 특히 7-8월에는 거의 매일 최고온도가 40도를 웃돈다. 한국처럼 습하지 않아서 땀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지만 대신 따갑게 뜨겁다. 양산이 아니라 파라솔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이 긴 여름이 지나가야만 우리는 다시 자유롭게 집 밖을 거닐 수 있게 될 것이다. 내년 회사 복지포인트로 트레드밀(러닝머신)을 꼭 사고 말리라 다짐한다. 나갈 수 없다면 집에서 걷는 수밖에.


TV도 다 봤고, 걸으러 나갈 수도 없고, 운동은 싫고, 밥도 다 먹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출근뿐. 이렇게 오늘 출근 시간은 1시 반으로 정해졌다. 우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끼고 바깥세상을 차단하고 업무에 돌입한다. 요즘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40분 정도의 시간 블록으로 업무시간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40분 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40초처럼 집중해서 밀도 높게 집중하려는 의도다. 블록과 블록 사이에는 화장실도 가고, 잠시 누워 허리에 휴식을 주기도 하고, 핸드폰도 확인한다. 이 20분이 초집중하는 40분만큼이나 빨리 흐른다는 사실이 미스터리다. 그래도 오늘은 밤에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라 특별히 집중이 잘되는 날이다. 스스로 만족스럽다. 


중국에 있는 상사와 회의를 무사히 마쳤다. 내 발표가 아주 마음에 드는 눈치다. 겨우 발표 하나 잘했다고 벌써부터 내년 4월에 있을 인사 시즌이 기대된다. 이것도 병인가...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시간은 10시 반에 가깝다. 흔치 않은 야근이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통근이 없으니 그저 씻고 눕기만 하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11시면 충분히 잠들 수 있다. 침대에 누워 내일은 또 몇 시에 출근할지 생각한다. 오늘 늦게까지 일했으니 내일은 더 느긋하게 시작해야겠다. 어, 잠깐만.


내일은 주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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