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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Oct 26. 2022

재택근무자의 집

애초에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집을 사는 일은 없었을 게 분명하다. 본래 계획은 미국 영주권을 받을 때 까지는 월세로 살면서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종잣돈이 모이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즈음이 되면 슬슬 주택을 장만해야겠다고 큰 그림을 그려 놓았었다. 아무리 빨라도 5년쯤 미래의 이야기라고 여겼다. 그런데 2021년 터져버린 코로나 팬데믹이 야기한 전방위적인 인플레이션과 주택시장의 활황은 이런 내 중장기 계획에 중대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나는 등 떠밀리다시피 주택 구매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에 보금자리를 찾게 돼서 다행이지만, 지난 반년 동안 내가 받은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의 무게라고나 할까. 한국이 앞서 2020년과 2021년 상반기에 겪었던 판매자 우위의 시장이 미국에 펼쳐지고 있었다는 점이 특히 힘들었다. 인터넷 부동산 웹사이트를 들러보고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봤자 이미 판매 완료된 경우가 허다했다. 괜찮은 동네 집들은 매물로 나온 지 고작 며칠 만에 판매되고 있었다. 가격은 더 황당했다. 판매자가 내놓은 가격은 그저 시작점에 불과했고, 대다수 주택들은 최대 20% 정도 웃돈을 얹어 거래되고 있었다. 6억짜리 집을 사고 싶다면 5억짜리 매물로 접근해야 그나마도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 가지 이유는 코로나 이후 변해버린 미국 사람들의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과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누가 뭐래도 접근성이 부동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중에서도 직장까지의 거리가 물론 가장 중요했다. 지금은 아니다. 2022년인 오늘 기준으로 미국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재택근무에 가담하고 있어서다. 특히 '화이트 칼라'로 불리는 일반 사무직 노동자의 경우 주 5일을 꼬박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다. 이에 따라 부동산 선택의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접근성 대신 크기, 쾌적함, 편의시설과 마당의 유무 등이 훨씬 중요해졌다. 도심에서 월세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도시 외각 내 집 마련으로 선회하기 시작하면서 단독주택 수요는 폭증했고 공급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 틈에 나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재택근무자로서 좀 더 크고, 좀 더 쾌적하고, 편의시설과 마당이 있는, 그러면서도 예산에 맞는 집을 찾다 보니 도시 중심부에서 점점 멀어졌다. 결국에는 원래 계획보다 20-30분이나 더 외각에 위치한 신도시(아직은 사람보다 소와 말이 더 많지만)에 자그만 주택을 구입하고 지금 이사 준비 중이다.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게 두 가지 있었는데, 바로 H마트(미국 최대 한인마트)와 치킨집이다. 원래는 치킨집도 BBQ가 아니면 안 쳐주지만 이곳이 미국인걸 감안해서 봐줬다. 아무튼 30분 정도 거리에 한인마트와 치킨집이 있기 때문에 시골인 건 우리 가족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 집 자랑을 조금 해보자면, 우선 방 3개에 화장실이 2개 있는 아담한 1층짜리 주택이다. 대지는 120평 정도 되고 뒷마당이 25평쯤 된다(이 정도면 텍사스에서 정말 작은 편에 속한다). 실내 면적은 50평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안다. 원래는 적어도 방이 4개는 있는 집을 원했다. 적어도 방 한 개는 재택근무를 하는 내 사무실로 써야 하는 데다 둘째 아이를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금리가 미친 듯이 오르는 바람에 방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비하면 두배나 넓은 공간이다. 또 불과 3년 전까지 아내와 살던 신혼집이 13평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저 뭐든 감사할 다름이다.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다.


한국 아파트 단지처럼 이곳엔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주택단지들이 대규모로 조성돼 있다. 집들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아니라 수영장과 헬스장 등 편의시설이 여럿 있고, 단지 내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들어와 있다. 이밖에 바베큐장, 테니스장, 산책로, 호수, 클럽하우스 등도 있어서 우리 가족의 생활패턴을 고려했을 때, 식료품 구매를 위한 외출이 아니면 동네를 벗어날 일 자체가 별로 없을 것 같다. 조금만 이동하려고 해도 차로 30분 넘게 달려야 하는 미국 교외 주거지역 특성상 이렇게 단지 내 편의시설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삶의 터전이 집 그 자체인 재택근무자에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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