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Oct 26. 2022

회사는 저 먼 곳에

캘리포니안 드림을 꿈꾸며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온지 1년 만에 우리 가족은 다시 텍사스 달라스로 이주했다. 2700km라는 어마 무시한 거리 탓에 장장 나흘을 온종일 운전만 해야 했기에 '이사'가 아니라 '이주'가 맞다. 아무튼 나는 캘리포니안 드림(그게 정확히 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아메리칸드림을 좇기로 했다. 바로 주택 구입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엔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단 한 채도 없었다. 반백년 된 방 두 개짜리 허름한 단독주택이라 해도 시작점이 백만 달러다. 여기에 학군이 좋고 안전한 지역을 원한다면 원화로 15억 원 정도는 필요하기 때문에 그냥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혹시라도 부모님 찬스나 빚으로 어찌어찌 감당해낸다 하더라도 가성비가 너무 떨어져 누구에게 권하고 싶진 않다. 괜히 캘리포니아에 미국 노숙자 인구의 절반이 밀집돼 있는 게 아니다. 주택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고 가격은 비합리적으로 비싸다.


렌트로 눈을 돌린다고 달라질 것도 별로 없었다. 2021년 한 해만에 렌트비는 15% 넘게 뛰어올랐다. 내가 살던 아파트도 월세만 원화로 400만 원 정도였는데, 달라스로 이사오지 않고 월세 계약을 갱신했다면 이마저도 440만 원으로 오를 예정이었다. 연봉은 기껏해야 1년에 3% 정도 오르는데, 이런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정말이지 감당이 안 된다. 그나마 자가 소유에 비해서 렌트가 가지는 장점이 유연성인데, 이 지역은 렌트 공급도 충분치 않아서 유연성을 활용할 틈도 없는 게 문제다. 6개월 넘게 매일같이 Zillow에서 이사 갈 곳을 찾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와중 월세는 집값과 함께 계속 올라갔다.


주거 문제로 걱정이 늘어가던 중 달라스 관련 소식을 팟캐스트에서 듣게 됐다. 매년 상당수의 사람들이 뉴욕, 캘리포니아, 시카고를 떠나 텍사스 내 달라스 메트로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왜 다른 곳도 아니고 텍사스일까? 궁금해졌고, 유튜브와 구글을 뒤지기 시작했다. 2-3주에 걸쳐 미친 듯이 달라스에 대해 공부했던 것 같다. 그 무엇보다 달라스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퀄리티 높은 주택들이었다. 공립학교 학군이 좋다는 점도 이내 알게 됐다. 학군 좋은 지역에 큼지막하고 멋진 주택을 4분의 1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니, 아이가 있는 부모로서 '이거다!' 싶은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주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사에 가장 큰 걸림돌은 직장이다. 어디에 살던 월급 나올 곳은 필요하니까. 이런 점에서 나는 이보다 행운일 수 없었다. 코로나가 선물해준 재택근무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변화에 적응하기로 하고 유연한 근무환경을 도입했다. 요지는 회사에 나오든지 집에서 일하든지 직원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는 굳이 이곳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묶여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물론 가끔 회사에 나가 동료들과 임원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관계를 구축하는 게 커리어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있지만, 어차피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게 인생인 것을. 나는 기꺼이 유연성과 재택근무를 택했다.


출근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점에 팀장에게 이주를 요청한다는 게 처음엔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마음대로 근무지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주State를 옮기는 건 임금 및 세금 관련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팀장과 인사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역시 내 팀장은 예상 이상으로 쿨했다.


"나 텍사스로 이주하고 싶어. 이곳 캘리포니아는 주거비 및 기타 물가가 너무 비싸서 말이야. 괜찮을까?"

"그래? 텍사스로 이주하면 연봉이 현지 수준에 맞춰서 조금 조정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어. 그건 이미 인사팀에 문의하고 답변 들었어. 내 입장에선 문제 안 되는 수준이야."

"그래. 네가 마음 편하게 일할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게 맞지. 내가 인사팀과 상의해서 사전승인 절차 진행할게. 언제부터 옮길 거야?"


2700km 떨어진 타주로 팀원이 옮겨가는데 필요한 대화는 이게 전부였다. 혹시나 팀장 또는 인사팀이 호의적이지 않으면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링트인을 매일 기웃거리고 레주메를 고쳐 쓰고 있었는데, 이날 팀장과 대화한 이후에 이직 생각은 바로 접었다. 여기보다 좋은 회사를 찾는 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닐 거란 생각이 이때부터 들기 시작했다.

이전 05화 내 맘대로 주 4.5일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