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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Oct 26. 2022

내 맘대로 주 4.5일제

우리 회사는 올해 초부터 주 4.5일제를 비공식적(?)으로 채택했다. 비공식인 이유는 이렇다.


시작은 근무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였다. 우리 회사는 분기마다 전 세계 직원들을 대상으로 근무 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광범위하고 세세하게 공유한다. 이를 이용해 분기별로 직원들의 만족도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쉽게 다각적으로 추적이 가능하다. 아무튼 작년 4분기 설문조사 결과 다수 직원들이 코로나가 야기한 비자발적 재택근무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냈다. 필요 이상의 원격 회의들이 생기는 바람에 개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는 게 요지였다.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우리 CEO와 인사책임자는 한 가지 새로운 업무체계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바로 금요일 오후 회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었다. 회의 종류에 상관없이, 직급에 상관없이 금요일 오후에 미팅을 잡으면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이 내려졌다. 하루 종일 이런저런 회의만 들락날락하다가 정작 자기 일은 처리할 시간을 갖지 못해 야근을 해본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이런 초과근무를 방지하기 위해 대신 금요일 오후를 텅 비워주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면서 CEO는 밀린 일뿐만 아니라 커리어 발전을 위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활용해 주길 당부했다. 그때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와우, 이제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이다!

재택근무자에게 회의 없는 오후는 퇴근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4.5일제에 발을 담그고 말았다. 한쪽으로만 흐른다는 엔트로피처럼 업무량도 역행은 불가하다. 이건 법칙이다. 이제 주 5일 근무제인 회사로는 절대 이직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나를 원할 만한 회사 중에 100% 재택근무를 보장하지 않는 회사를 제하고, 주 5일제까지 제하고 나면 정말이지 남는 회사가 거의 없다. 우리 회사에 이직률이 낮아질 거라는 데 손목까지는 아니어도 내 월급을 걸겠다. 흠, 사실은 이게 우리 CEO의 큰 그림이었으려나?


이런 글을 읽으면 부장님을 포함한 윗분(?)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역시 직원들 재택근무시키거나 주 4일제 같은 거 하면 놀 생각만 하지 일은 안 한다고. 더 빡시게(?) 굴려야 된다고. 사실 이건 사람-by-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입장에서 변명을 조금 해보자면 이렇다.


우선, 금요일 오후부터 놀 생각이기 때문에 그 주에 마쳐야 할 일이 있으면 알아서 주중 저녁에 보충해서 일하게 된다. 당장 이번 주 목요일 밤 9시에도 업무 회의가 하나 잡혀있다. 둘째로, 정말 금요일 오후에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당연히 한다. 회사가 유연성을 제공하는 만큼 나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그렇게 미리 예상치 못한 일이 갑자기 내 앞에 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 이게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 중 하나다. 서로 떨어져 일하로 눈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업무 스케줄을 존중해 미리미리 일정을 짜고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다). 결국 4.5일제로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실제 업무시간이 줄었다기보다는 금요일 오후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더 큰 자유가 주어졌다고 보는 편이 옳다.


여기서 한 발작 더 나가 0.5일이 더 줄어서 주 4일 근무제가 된다고 해서 내 업무방식이나 업무량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내 월급만큼 일한다는 책임감만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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