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싫은 아이는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내가 대답해줄 수 있거나 인터넷 검색이 필요한 여러 질문을 지나 딸아이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묻는다.
엄마는 왜 안놀아?
딸아이 눈에 내가 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잘못된 것이 아닌데도 나는 딸아이에게 변명하듯 내가 어떻게 노는지 이야기해준다.
어느 정도 자란 아이는 내 생활을 관찰하고 나에게 결과를 보고한다. 그동안 아이의 두 눈 앞에서 내 모든 사적인 일상 생활이 가능했던건 아이가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아이가 보는 데서 나를 드러내고 살아가는 일이 불편했지만 가능했던 이유가 아이의 울음에는 아이의 요구가, 아이의 침묵에는 나의 해석이 있어서였다. 이렇게 나의 사생활은 아이의 깜빡이는 눈이 아니라 다문 입에 달려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텔레비전도 보고, 노래를 틀어놓고 설거지 하는 것도 노는 거랑 똑같다는 나의 말을 딸아이가 막아선다. 자신은 어른이 되어서도 놀이터에 가고 킥스쿠터를 타고 친구들이랑 숨바꼭질을 하면서 놀 거라고. 나는 딸아이에게 조용히 화이팅을 외쳐줬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자신은 죽을 때까지 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어떻게하면 딸아이가 죽을 때까지 놀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자신이 하는 일에 아무런 가치와 의미를 두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놀고 있네, 자조할 수 있겠지만 딸아이가 원하는 건 즐거운 놀이, 친구들.
잘 살아봐, 딸 화이팅!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