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카톡 비디오 챗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다. 선생님이 집으로 오실 때보다 딸아이가 혼자 해내야 할 몫이 커졌다. 특히 악보 읽는 법에서. 피아노 진도는 전보다 느려졌지만 이렇게나마 피아노 레슨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싶다. 그래도 피아노 선생님이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딸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박수까지 쳐가면서 부르면 세상 모두가 우리처럼 이렇게 예전보다 불편해진 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만 이러고 있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였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재미가 없었고, 피아노를 잘 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그냥 잘 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내가 천재라면, 같은 생각을 했다. 피아노를 그만둘 때 엄마와의 갈등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좀 아쉽다. 나의 의견이 반대 없이 존중받은 건데도 말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한 결정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되어 살아온 기분이 든달까.
피아노를 배운 지 2년째, 이제 어느 정도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된 딸아이는 선생님의 말을 흘려듣는다. 이게 선생님 옆에 앉아 피아노를 배울 수 없게 된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선생님이 말로 고쳐준 부분을 반복해서 틀리게 연주하는 걸 듣고 있다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 정도면 됐어, 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틀린 연주. 딸아이도 피아노를 멋있게 치고는 싶지만 연습은 하기 싫은 그곳으로 가고 있다.
딸아이가 마인크래프트를 하는 동안 나는 딸아이의 피아노 연습곡을 친다. 예전에 배워서 잘 쳤던 기억이 나는데 그 기억을 지금 여기에 되살려놓으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딸아이의 피아노 연주를 흠잡아 멈춰 세우기는 쉽고, 내가 직접 연주하는 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어렵다. 악보를 읽으면서 손가락을 건반 위에서 움직이는 게 단순해 보이지만 연습을 많이 해야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더듬거리지 않는다. 그래야 손가락에 눈이 달린 것처럼 건반의 위치를 제대로 짚을 수 있다. 연주하는 사람에게 틀린 음은 들을수록 아쉽고 다시 바르게 치고 싶은 부분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소음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칠 때는 전자 피아노의 볼륨을 최대로, 딸아이가 칠 때는 중간으로.
나의 피아노 연습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도끼질 같던 피아노 연주가 점점 들어줄 만한 음악이 되어가는 걸 아이가 듣고 잘하고 싶으면 그냥 연습하면 된다는 걸 배운다. 똑같은 걸 매일 반복하면 그건 결국 다른 것이 된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매일 똑같이 나로 살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