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집으로 와 18화

아저씨

by 준혜이

거실 바닥에 뒤집혀 있는 식탁에서 다리를 분리하는 전동 드릴 소리 사이로 아저씨가 물었다. 보스턴에 좋은 학교가 많은데 어디로 공부하러 가는 거냐고. 나에게 왜 이사 가는 지를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아저씨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는 게 나는 좋았다. 우리를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고 있거나, 나이와는 상관없이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아저씨의 말이 그저 별 의미 없는 나 듣기 좋은 말이기만 하더라도 그건 정말 듣기 좋은 말이었다. 아니에요, 남편이 직장을 옮겨서 이사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하는 내 말소리에 드르륵거리는 드릴 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일하는 틈틈이, 이삿짐이 나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아저씨가 나에게 건네는 말은 내 생활의 어느 지점이, 내 소유의 어떤 형태가 낯선 사람의 궁금증을 자아내는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 나도 궁금해졌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사를 하다 보면 아저씨의 집을 보는, 가구를 고르는 안목이 높아지는지, 어느 순간 인류의 욕망과 취향에 실망하고 말 건지.


시카고에서 뉴저지로 이사할 때 우리가 부른 이삿짐센터 사람은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 트럭을 세우고 폴짝 뛰어내리더니 그 자리에서 우리 집 현관 입구까지의 거리를 발걸음으로 쟀다. 그러고는 추가 비용이 400불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그때 어쩐 일인 지 은행 계좌에 500불도 없었다. 화가 난 남편이 그 사람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은행 계좌에 찍힌 숫자를 보여주기까지 했지만 추가 비용 없이는 짐을 내려주지 않겠다고 해서 우리는 그 사람한테 200불이나마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이사는 우리에게 양아치와 다름없는 말이 되었다. 뉴저지 안에서 또 한 번의 이사를 결정하고 우리는 당하더라도 한국 사람에게 당하겠다는 심정으로 한국인 이삿짐센터만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찾아낸 사람이 이 아저씨.


이년 연속 여름마다 우리 집 이사를 해준 아저씨에게 오 년 전에 내가 내년에 또 이사하게 되면 연락드릴게요,라고 했을 때 아저씨가 그랬다. 여기서는 오래 사셔야죠. 아무런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내뱉은 말, 누가 듣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는 말이었는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들리는 여기서는 오래 살라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공손하게 아, 네. 했다. 아저씨가 우리 집 물건에 아무런 흠집도 내지 않고 완벽한 이사를 해준 건 아니지만 나는 이런 기억과 때마침 올 초에 받게 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아저씨의 카톡에 보스턴으로의 이사까지 아저씨에게 맡긴 것이다.


보스턴 집에 이삿짐을 다 내려주고 나서 아저씨가 이제는 제가 이사해드릴 일은 없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제가 이사한다는 친구들한테 다 아저씨를 소개했어요!!! 아쉬웠다. 악수라도 해야 하나, 한 번 안아봐도 되나. 남편이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아저씨에게 이사 비용을 건네자 아저씨는 뜻밖이라는 표정과 몸짓으로 우리에게 감사했다. 그 앞에서 나는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저러지 하는 생각과 저런 게 단골을 만드는 사업 비결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내가 아무것도 잘 알지 못하는 것뿐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뉴저지에서 아저씨에게 건네준 보스턴 집 열쇠를 돌려받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열쇠요. 아, 맞다. 열쇠 어떡하지? 뉴저지 가서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요즘 나는 우편물을 신경 써서 살펴보고 있다. 왠지 아저씨가 열쇠만 덜렁 봉투에 넣어서 보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어디까지 외로울 거지?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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