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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Oct 07. 2021

치과에서

   내가 어찌 사람인가 의심되는 순간에 벌린 입 속으로 남의 손가락이 들어와도 그걸 물지 않아 내 사람이오,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떳떳이 대답해 줄 수 있다. 2년 만에 찾아간 치과 진료 의자에 무방비상태로 누워 두 손은 배 위에 공손히 모은 채 나는 치위생사의 손길을 입술로 치아로 혀로 잇몸 모두로 동시에 느꼈다. 이젠 더 이상 못 참겠어 기절이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치위생사는 입 속에 차가운 물을 뿌렸다 거둬갔다. 치석 안녕. 내 머리맡에 앉은 치위생사 언니의 뱃속을 울리는 꼬르륵 소리가 내 오른쪽 귓가에 들려왔다. 그때가 오전 열 한 시쯤이었는데 언니 저는 치과 오기가 싫어서 아침에 커피만 한 잔 마시고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언니는 왜 여태 굶고 일 하나요?라고 입 벌려 또박또박 말할 수는 없었다. 치위생사 언니가 파란색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자꾸만 내 치아의 개수를 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단한 느낌은 언니가 손가락에 주는 힘인가 내 잇몸의 탄력인가. 나는 두 입술을 모아 언니의 손가락을 깨물지 않았다. 내가 개나 그 어떤 동물도 아니라는 증거였다. 치위생사는 여러 번의 확인 끝에 아래 송곳니 두 개 사이에 네 개의 치아가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세 개뿐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동안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생명에 지장이 없어서 그랬나,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그렇다고 나는 뭐 그런 걸 다 일일이 알고 싶기는 한가. 알고 보니 제가 지금까지 아랫니 하나가 없다는 걸 모르고 살아왔어요. 이게 가까운 누군가에게 힘겹게 고백하며 눈물 흘릴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치석 제거를 마치고 나는 옆 방으로 옮겨가 누웠다.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 아래 눕는 게 이리 거북할 줄이야. 와인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올 일이라고까지 생각할 무렵 내 오른쪽 어깨를 미는 치과 의사의 딱딱한 배를 온몸으로 느끼고 말았다. 내가 만삭일 때 배가 이렇게 튀어나오고 단단했는데 이 아저씨 뭐야. 고혈압, 지방간, 콜레스테롤. 충치는 없다. 오래전에 때운 어금니를 다시 때워야 할 뿐이다. 치과 의사 선생님이 내 어깨에서 배를 떼고 말씀하셨다. 아, 예, 감사합니다. 나는 누워서 대답했다. 진료가 다 끝났는데도 의사는 나를 눕혀놓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투명 치아 교정을 하는 게 좋겠다고. 그러면 완벽한 미소를 어쩌고 저쩌고. 선생님 저는 웃고 싶지 않아요, 말하면서 치명적으로 썩은 미소를 공중을 향해 날리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생각해보겠다고만 했다. 당신이 지금 당장 치아 교정을 하지 않는다면 턱관절 이상으로 저작 활동에 문제가 생겨 곧 위암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라는 얘길 들었다면 모를까. 겨우 완벽한 미소라니. 선생님, 저는 연애, 결혼, 임신과 출산 등 얼굴로 몸으로 이뤄야 할 모든 일을 이미 다 이루었어요. 쉬고 싶어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웃어 보이고 싶지 않아요, 떠들었다면 치과 의사는 나에게 정신과 상담을 추천했겠지.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문을 거칠게 닫아버리는 심정으로 감사합니다, 안녕. 하고 나는 몸을 일으켜 서둘러 치과 밖으로 나갔다. 앞으로 6개월 간 치과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면서 치아 교정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고르지 못한 치열이 나를 갉아먹는 콤플렉스는 분명 아니었다. 나에게는 치열 말고도 다른 문제들이 산재하고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치열은 내 존재의 괴로움에서마저 소외된 것이긴 했지만. 거울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집에 가는 길 내내 반복적으로 이-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나의 이 완벽한 미소를 보이며 뭐 이런 장사꾼이 다 있어, 투덜거렸다. 이 치과 의사가 남편에게도 투명 치아 교정을 권유했던 것이다. 우리 둘의 치아 교정 비용으로 커피를 마시면, 책을 사 읽으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해 봐,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스마트폰의 까만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이, 화장실 거울 앞에서 이, 나는 남은 하루 본의 아니게 스스로에게 되다만 미소를 날렸다. 그러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만나면 안 그래도 너무 나이 들어서 놀랄 텐데 교정까지 하고 나타나면 더 늙어 보이겠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널 만나고 싶다. 야, 그냥 치과 다니기 싫다고 솔직히 말해. 어. 나 누구랑 얘기하니? 너. 이런 생각에 빠져 있다 나에게 꿈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마지막으로 나의 미소가 완벽해야만 하는 곳, 요양원. 지금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서 요양원의 여왕벌이 되겠어. 그곳엔 너 같은 할머니들만이 가득할 거야. 그땐 남녀노소 불문 모두 사랑.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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