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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Oct 20. 2021

침입자들

   딱따구리가 우리 집에 구멍을 두 개나 뚫어놨어. 너네도 조심해. 어떻게 해결할지는 유튜브를 찾아볼 거야. 아저씨가 애들 스쿨버스 시간에 맞춰 나온 우리를 보자마자 말했다. 평소에는 아무 말이 없는 아저씨의 딸이 딱따구리가 자기 방 벽에다 그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이웃의 말로 우리 생활에 딱따구리 생각이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 학교로 보낸 뒤 딱따구리, 허! 하면서 나와 남편은 헛웃음 소리를 냈다.


   소파에 편히 기대어 앉아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며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를 한참 읽고 있을 때였다. 다이닝룸 한쪽 벽 속에서 무언가 벽을 긁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읽던 책을 테이블 위 커피잔 옆에 엎어놓고 살금살금 벽으로 걸어갔다. 쥐. 벽에 귀를 대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이씨, 손바닥으로 벽을 막 두드렸다. 그리고 지하실로 뛰어내려 갔다. 이래서 우리가 이 집에 이사 들어오자마자 해충, 유해동물 방제업체와 계약을 맺은 거지. 거미, 모기,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벌레와 쥐가 우리 공간으로 자꾸 침입하니까. 보일러실 문을 열고 방제업체 아저씨가 놓아준 끈끈이를 찾아보니 생쥐 한 마리가 도토리 하나와 함께 붙어있었다. 나는 끈끈이 앞에 쭈그려 앉아 생쥐를 바라보았다. 몸통은 손가락 두 마디 만한 크기, 꼬리는 한 뼘 길이, 새까만 눈동자는 쥐똥같이 생겼다. 끈끈이에서 빠져나오려고 몸을 움직일수록 더 옴짝달싹 할 수 없어지는 신세의 생쥐에게 나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유튜브를 검색해 쥐를 쫒는다는 초음파 소리를 들려줘봤다. 그 소리에 쥐가 가끔 귀를 쫑긋 거리면서 몸을 떨었는데 끈끈이에 붙잡혀있지 않았다면 그 소리에 도망치고 말았을까는 끝내 알아낼 수 없었지. 미안해. 나는 쥐에 사과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은 방제업체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기로 한 날이었다.


  아저씨가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나는 현관문을 열어 보일러실에 쥐 한 마리가 잡혀있습니다, 다급히 보고 했다. 아저씨는 2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와서 쥐가 몇 마리나 침입해 들어왔는지 내 얘기를 듣고 집을 이리저리 살펴 작은 틈새를 찾아 매우는 일을 한다. 처음에는 두 마리씩 세탁실, 보일러실에서 나오다 한동안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가 날씨가 추워지자 한 마리씩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뼈가 통과할 만한 아주 작은 구멍 하나만 있으면 쥐가 집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를 친한 언니에게 들었다. 아저씨는 굴뚝 주변에서 몇 개의 틈을 발견했다며 철수세미 같은 걸로 거길 막고 이주 뒤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나를 떠났다. 진정되지 않는 어떤 기운에 휩싸여 나는 창문 앞에 서서 식은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쥐라니, 우리가 사는 집에 어떻게 쥐가. 이것은 수치심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마음이다. 비겁하게 독살은 하지 않겠어. 땅콩잼으로 치사하게 유인하지도 않을 거야. 오직 끈끈이 하나로 거기 네가 발을 내려놓은 순간 아, X 됐네, 하기를 바라겠어. 그 뒤처리는 용감하고 비위 좋은 내가 한다.  


   뜨거운 커피를 새로 한 잔 내려 들고 나는 부엌에서 거실로 나와 다시 소파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키는 싫지만 내가 하루키 책 속에 나오는 여자들을 닮고 싶어 했네, 장편보다 단편이 더 좋은데 상실의 시대를 제일 좋아해, 에세이도 괜찮네, 하면서 하루키를 읽어온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읽고 나면 늘 어딘가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이 되면서도 하루키 읽기를 그칠 수가 없어 언젠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하루키가 참가한다면 가서 일본어로 작가님 만수무강하세요, 외치고 싶다. 아이씨, 딱딱한 게 일정하게 벽을 치는 소리가 다. 아침에 이웃 아저씨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걸 딱따구리가 아닌 솔방울이 지붕 위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소리로 듣고 무시했을 것이다. 현관문을 조용히 열고 밖으로 나가 나는 딱따구리가 다이닝룸이 위치한 외벽을 부리로 쪼는 광경을 목격했다. 야! 딱따구리가 날아서 도망갔다. 딱따구리는 먹이 사냥을 하고 둥지 건설을 위해 나무나 집에 부리질을 한다고 구글에서 읽었다. 우리 집에 네가 살 곳은 없어. 먹을 게 필요하다면 끈끈이에 잡힌 쥐는 갖다 줄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집을 둘러싼 쥐와 딱따구리와 나의 생태계에서 최약자는 누구냐. 내 남편이지. 끈끈이에 잡힌 쥐를 치우겠다고 장갑 끼고 눈삽 들고 씩씩대고 머뭇거리다 맨손으로 생쥐 붙은 끈끈이를 집어 든 내 갈 길을 터주려 뒤로 재빨리 물러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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