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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Oct 28. 2021

뭐라고 그랬지

   오늘은 잘 잤냐고? 나는 어제도 잘 잤는데. 남편은 어제 아침 내가 목소리를 바꿔가며 잠꼬대를 해서 무서웠다고 했다. 이불속에 파묻혀 누워 자고 있는 게 분명한 내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누군가를 혼내듯이 말하다 원래 나의 목소리로 변명하듯 말하는데 남편은 침대에 누운 채 저걸 동영상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잠 기운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병인가? 우리는 네이버, 구글 검색을 시작했다. 목소리 바꿔가면서 잠꼬대, 두 사람인 척하는 잠꼬대, sleep talking multiple personality while sleeping, sleep talking split personality. 결과는 다음에 또 그러면 내가 졸려도 꼭 동영상 찍을게, 하는 남편의 약속이었다.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혼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나는 혼나는 사람이 아니라 혼내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의 존재를 압도하며 나를, 내 생활을 수정, 보완하려는 타인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건 고등학생 때가 끝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다툼과 싸움이거나 침묵, 단절이었지 꾸지람은 아니었다. 서로 다퉜지만 일방적으로 혼난 것 같은 싸움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자세히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다 잊어버렸네. 내 잠꼬대가 한국말이었어, 영어였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이었어.

   운전하는 동안에, 책을 읽다가, 창문을 열면서 불쑥 떠올랐다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기억에 꿈꾸듯이 하루를 사는 날이 있다. 그 기억을 내가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서는 아니고 그게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거나 내 미래를 바로잡을 중요한 단서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오래된 기억들로 깨지는 그날의 침묵을 내가 꾸는 꿈이 꾸고 싶은 꿈인가, 하면서 살아간다. 내 모든 기억의 주인공들에게 그때 내 곁에, 여태까지 내 안에, 지금 내 옆에 하는 고백을 바치고 오늘 네가 내 꿈에 나왔어, 어놓을까 다. 그러니까 기억도 나지 않는 꿈에 나타나 내가 되어 나를 혼낸 건 네 이놈, 남편이 아니더냐.

 

   남편에게 어느 날 내가 또 잠꼬대를 하면 동영상은 찍지 말라고 했다. 그걸 보면 내가 무서워서 잠을 잘 못 잘 것 같으니까.


   나중에 매일 나에게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 내 기억 속의 누군가로, 내 꿈같은 하루의 주인으로, 여기 아닌 어딘가의 그 누구로, 내일이 될 수 없는 오늘과 어제의 노예로 내가 잠들기만을 기다리고, 알아듣지 못할 잠꼬대만을 진실로 나를 살아갈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우리 모두가 생애 한 번쯤은 그렇게 목소리를 바꿔가며 서로의 기억 속을 헤매다 어디선가 만나겠지, 만났겠지. 여보, 이제 그만 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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