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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Nov 11. 2021

파국 메들리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내 품 안에 잠든 너에게 우우우 워우 워어어 너를 사랑해 (한동준, 너를 사랑해) 당신의 아침이 오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저처럼 귀를 처 막아도 들리는 스마트폰 기본 설정 알람인가요? 언젠가 친구들이 모인 어느 아파트 거실 소파에 앉아 누가 제일 오랫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지 시합을 하면 내가 독보적인 기록으로 일등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저 멀리 벽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아있던 남자애가 웃으면서 그걸 죽음이라고 하는 거야, 했다. 거의 15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가끔 그렇게 말하는 그 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경고, 그걸 죽음이라고 하는 거야.  

   커피를 내리면서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읽는다. 머뭇거림 없이 얼마 전에 완성한 파국 메들리를 튼다. 거기에는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김동률 양보. 이브 호텔, 이렇게 세 곡이 들어있다. 이 세 곡은 함께 들으면 들을수록 파국이어서 예술이다. “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당신의 사랑을 믿나요. 나만큼 잘해줄 수 있나요 지금의 사랑이 언제든 이렇게 항상 같을 거라 믿나요” (김동률, 양보) “처음부터 잘못된 길인 걸 우리에겐 더 갈 곳이 없다는 걸 알아” (이브, 호텔) 이렇게 마지막 노래까지 차례로 한 번 듣고 나면 16부작 막장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본 것처럼 진이 빠진다. 내가 반할 남자는 이브의 노래 호텔 속의 남자. 용서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떠나라고 하면 그럴 수 없는 마음 때문이랄까.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가 그녀를 서로 자신에게 양보하라 아무리 목소리 높여 싸워도 당신들이 사랑하는 그 여자한테는 또 다른 남자가 있을 것만 같아. 아니, 그런데 이제 신해철의 일상은 죽음이라니. 내게로 와 줘. 나, 나, 나중에요.

   

   우리 동네에는 공동묘지가 여기저기 있다. 10월이 되자마자 핼러윈 장식이 놓인 묘와 그렇지 않은 묘를 보면서 누가 오랫동안 죽어있었는지, 새로 죽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가 누구를 계속 그리워하는지, 누가 잊혔는지를 생각하다 살아있는 사람도 죽은 사람도 각자 제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역시 죽음은 산 자의 것. 죽음마저 자신의 것이 아닌 사람들이 안쓰러워 블루투스 마이크를 들고  일상으로의 초대를 고래고래 모든 묘지 사이를 공평하게 걸어 다니면서 부르는 나를 상상했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무당이라고 하지 않나. 죽어서야 겨우 누려보는 온전한 고독과 적막을 제발 네 마음대로 깨지 말아 줘. 아, 예.

   

     내가 자주 가는 식료품점 건너편의 묘지에는 1800년도에 죽은 사람의 묘가 있다. 그 공동묘지 옆에는 요양원이 있고 나는 장을 볼 때마다 그 두 곳을 곁눈질한다. 그러다 보면 이 땅에서 언제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죽어있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내 몸은 북극곰의 먹이로 줘버려라. 엄마 그러다 우리 다 죽어, 그리고 북극곰 멸종했어. 그냥 우리가 알아서 할게. 아, 그래, 사랑한다. 북극곰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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