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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Nov 30. 2021

Homecoming

   추수감사절이라 몬트리올에 다녀왔다. 이사하고 나서 처음 집을 비우는 일이었고, 오랜만에 국경을 넘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자주 다닐 땐 최소한의 짐 싸기에 도가 튼 사람처럼 이게 다인가 싶은 가방과 함께 집을 떠나곤 했는데 코로나의 영향으로 지난 몇 년간 대부분의 휴일을 집에서 보낸 결과, 우리는 여행 짐을 이삿짐처럼 싸놓고도 불안해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럴 만도 하다.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하면서 전동 드릴 모양 마사지 기계는 가방 속에 던져 넣었으면서 나와 남편 그 누구도 어른 치약은 챙기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캐나다로 떠나기 사흘 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네 식구 중에 코로나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국경을 넘는 시점에서 72시간 이내로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없으면 외국인은 캐나다로 들어갈 수 없고, 캐나다 사람은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스마트폰 앱 ArriveCan에 여권, 영주권, 코로나 검사 결과, 백신 접종 여부까지 미리 등록하면서 우리를 귀찮게 하는 나라의 존재를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도 이러면 국경에서 사람이 일할 필요가 없잖아? 하는 진심과는 멀리 떨어진 말을 괜히 한 번 내뱉어본다. 국경의 묘미는 불편하게 떨리는 세관과의 만남이죠. 그리고 나에게는 이제 세 나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캐나다 영주권자, 미국 영주권자, 대한민국 시민권자로서 말이다. 아, 이것이 내게 세 나라이자 한 나라, 세 남자였더라면 마치 미스터 선샤인의 고애신처럼 대한 독립 만세


   우리 집에서 몬트리올 시동생 집까지 차로 약 5시간 30분이 걸린다. 수요일 저녁 7시부터 운전해 북쪽으로 세 시간. 새까만 밤하늘에 짧은 선을 수없이 그으며 눈이 내리는 버몬트의 어느 호텔 화장실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부 풍선껌 맛 치약으로 이를 닦았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이 된 우리에겐 정말 곤란해, 퉤퉤. 방이 더워서 실내온도를 내렸다. 이제 나도 잠자리가 바뀌면 잠이 잘 안 오는구나,를 끊임없이 되새기다 잠이 들어 그래도 밤을 새울 수는 없네, 하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웃었다.


   캐나다로 출발하기 전에 우리는 할 일이 있었다. 호텔 근처 월마트 약국에 가서 어른들은 코로나 부스터 샷과 독감 예방 접종, 아이들은 코로나 백신 1차 접종. 매사추세츠에 살면서 버몬트에서 독감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독감 주사는 의료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한국과 캐나다의 의료 체계를 경험해 본 우리는 이럴 때 순간 당황하고 바로 미국 의료 보험을 욕하는 동시에 순순히 돈을 지불한다. 그 비용이 애매해서 모니터 앞에 서서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는 약사에게 그렇다면 독감 주사는 맞지 않겠어요, 말하기가 좀 그런 게 아니라 독감 예방 접종은 캐나다를 위해 우리가 차리는 예의요.


   아이들은 다음 달 즈음에 코로나 백신을 맞출 계획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벌써 백신 1차 접종을 받은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백신 맞았냐는 질문을 여기저기 던지며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을 색출하고 있다고 얼마 전에 딸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다. 그 말에 속으로 흠칫 놀라 한 달 정도만 기다려보자는 마음이 사라졌다. 아이들의 세상도 어른들 세상 못지않다는 건 잊어버렸지만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을 정면으로 받으며 표정 관리하는 건 잊지 않았으니 딸아이는 누구에게도 복수하지 않겠지, 새로운 색출자가 될 생각은 아예 못할 거야. 조용히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다 전하는 방법을 찾는 동안의 내 표정은 아마


   언가 극적인 상황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런 어려움조금도 겪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는 국경에서 우리는 캐나다 여권 두 개, 미국 여권 하나와 대한민국 여권 하나, 미국 영주권 카드 세 개를 세관에게 친절히 까보이며 차에서 내릴 필요도 없이 캐나다로 곧장 입장했다. 딸아이를 위해 우리는 미국 시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지자마자 시민권을 따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여권으로 세계의 국경을 넘나들고 싶다. 무엇보다 한글 아름답고요, 두 나라의 경계에서 타인에게 확인받는 나의 국적이 그에게 알리고 싶은 나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한국까지 미국 여권으로 들어가는 내가  오 필승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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