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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Dec 02. 2021

방문자

    남편의 할머니, 나의 시할머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갔다.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 다 맞은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해 아이들은 주차된 차 안에서 남편의 엄마, 나의 시어머니와 함께 우리의 전화를 기다려야 했다. 작은 규모의 종합병원과 미술관을 섞어 만든 듯한 요양원에 우리 아이들이 등장하면 아이들을 발견한 그곳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말을 붙이고, 눈을 맞추고, 웃어 보이고 그 잠깐의 순간은 작은 폭죽이 쉬지 않고 터지는 것만 같을 텐데. 예전과 달리 텅 빈 요양원 건물 안을 남편의 아빠, 나의 시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으며 각자의 방 안에서 이 시대의 불편과 불행을 감내하는 인류의 마지막 얼굴에 노크하고 싶었다. 창 밖으로는 겨울의 새싹 같은 눈이 사방으로 잘게 흩날리고 있었다.

   남편의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할머니는 이미 완성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70세가 넘은 여자도 해마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 80세가 되고 90세가 넘을 수도 있다는 걸 나이가 많아, 그 어떤 시작도 늦었어, 스스로를 미리 완결된 실패라 믿었던  20대의 나, 30대의 내가 생각해봤을 리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해에 태어난 아이는 이제 중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텐데 할머니는 여전히 할머니라는 걸 생각하면 성장의 공격적인 기세와 노화의 끈질긴 교묘함이 새삼스러워 이 생애를 끝까지 잘 살아내고 싶어 진다.      

   요양원 2층 복도 끝의 현관문을 열었더니 할머니가 보조 보행기를 두 손으로 짚고 문 바로 뒤에 서 계셨다. 소파, 식탁, 서랍장, 텔레비전, 침대가 제각기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원룸 아파트 같은 방에서 할머니는 우리가 온다는 전화를 받고 우리를 마중 나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와 남편의 얼굴을 보고 할머니는 본인의 아들에게 인사할 때보다 더 크게 입이 찢어져라 웃으셨다.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가 멀리서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손자와 손자며느리라는 걸 알고 계시다는 증거. 사실 우리는 할머니의 알츠하이머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리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 베푸는 시부모님의 배려일까. 여전히 나 하나만으로도 버거운 일상을 아이 둘까지 돌봐가며 겨우 지탱하고 있다는 우리의 어리광인가. 아니 이건 그냥 누가 어떻게 시작해서 이어나가야 할지 모를 대화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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