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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Oct 13. 2021

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에 대하여는 아니고

   방문을 열면 한 팔을 옆으로 쭉 뻗은 만큼의 폭의 창문 네 장이 겁을 주듯 온 하늘을 품고 있다. 사람 허리 높이쯤에서 시작해 방 천장까지 키가 큰 창문은 얇은 금속 창틀 탓인지 손바닥으로 살짝만 밀어도 나까지 밖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그런 창문 위로 나는 커튼도 달지 않고 매번 두려운 하늘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며 지냈다. 아파트 6층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고 공중으로 나가는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는 창문을 등지고 서면 될 일이었다. 2005년의 내가 혼자 있는 방의 풍경이 그랬다.  


   밖으로 뚫린 네 개의 빈 칸 같은 유리창을 지나 달빛이 베개 위의 얼굴로 쏟아지면 나는 긴긴밤 잠 못 들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그 빛 속을 헤맸다. 지나온 모든 시간과 공간, 다가올 어느 때와 장소가 모두 그 한 밤의 끝 모를 문장이었고, 주인 없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영원한 밤에 취해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은 순간이 오면 꼭 기차의 기적소리가 담배 연기처럼 내 귓가로 들려오다 서서히 사라져 갔다. 어둠으로 해를 감은 지구의 정적을 더욱 까맣게 물들이는 한밤중의 기적 소리. 그 소리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 두 눈을 번쩍 뜨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한테 묻는다. “너는 나를 얼마나 좋아해?”” (무라카미 하루키, 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   


   자정 넘어 어딘가로 떠나는 먼 기차소리에 잠을 설치는 건 이제 나뿐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사흘이 지나고나서 남편과 아이들은 더 이상 잠결에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함께 누운 수많은 밤마다 나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아이들의 고르고 깊은 숨소리와 그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에 기차 지나가는 소리까지 더하면 내가 밤과 낮의 구분이 무의미한 나날을, 나에게 다정함을 요구하는 온 세상에 신경질을 부리면서 살아가게 될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매일 밤 나는 불 꺼진 방 안 침대에 누워 가족들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고 수영 귀막이로 귀를 틀어막는다. 숙면의 밤이 이대로 언제까지 계속될 건지 알 수 없어 어느새 수면 안대까지 두르고 말이다.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물속에 가라앉은듯한 먹먹함을 느낀다. 그 상태로 수면 안대 속의 어둠 속에 두 눈을 꼭 감고 깊고 깊은 밤을 시작한다. 소리 없는 밤과 두 겹의 어둠은 두꺼운 이불 밑의 나를 혼자에 가둔다. 그러던 어느 밤 느닷없이 귀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내 거친 숨소리로 산소통을 메고 바닥 없는 바닷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다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온 몸을 두드리는 나의 정신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잠 못드는 밤이 하나, 둘 다시 찾아들었다.


   “그렇지만 그때 저 멀리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 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먼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도 선로 같은 것이 있는지, 나도 몰라. 그만큼 멀리 들리거든. 들릴 듯 말 듯하다고나 할 소리야. 그렇지만 그것이 기차의 기적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알아. 틀림없어.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러고 다시 한번, 그 기적 소리를 듣지. 그러고 나서 내 심장은 아파하기를 멈춰. 시곗바늘은 움직이기 시작해. 철상자는 해면을 향해서 천천히 떠올라. 그것은 모두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 듯한 그렇게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라고. 나는 그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해.” (무라카미 하루키, 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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