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한 교실에 둘러앉아 아침부터 영어를 배우려면 모두에게 제각기 안정된 일상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는 중국으로 떠났어, 가족일로 말이야. 직장 상사가 그에게 더 이상 이 시간을 허락해 줄 수 없대. 그가 그만뒀어. 화이트보드 앞에 홀로 서서 책상을 끼고 앉은 우리에게 불규칙적인 주기로 저런 소식을 전해주는 선생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내 차례는 과연 언제일까,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단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별 탈 없는 일상과 상관없이 집 나가면 언제 어디서나 고생이니까요.
영어 수업에 한 부부가 새로 들어와 소곤거리며 나란한 두 자리를 차지한다. 교실 속 사람들에게 그들이 우린 부부라고 아직 밝히진 않았지만 그 둘 사이가 부부라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저렇게 남편과 함께 같은 교실에서 외국어를 배우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그 외국어가 영어만 아니라면 괜찮지 않을까.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낯선 언어로 서로 겨우 배운 만큼만 토막 내어 건네는 의미야말로 너와 나의 근본적 차이의 비무장지대일지 모르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주고받는 말에 기대하는 친밀감이 무한해, 아니, 제발 나한테 그런 식으로 못 알아듣게 말하지 마, 하고 말겠지, 살짝 고개를 저어보는 찰나 들려오는 새침한 목소리.
난 상하이에서 왔어.
스스로를 중국 출신이라 소개하지 않는 중국인은 처음 만나. 당신에게 난 서울에서 왔어,라고 대꾸할 수 없어, 그건 내가 서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다시, 난 샹하이샹하이샹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꾸깃꾸깃한 발음으로 아, 예, 하이, 전 한국 사람 입죠. 어쩐지 같은 영어로 말하고 있지만 나만 존대하는 기분이 들면서 도시도 나라도 영어도 전부 기세, 대한민국 만세.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