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교실 한구석으로 기꺼이 물러나 텅 빈 화이트보드 앞에 두 눈을 내리깔고 선다. 말없이 말하기를 배울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겠지. 그걸 알면서도 영어로 말할 때만 나는 내 목소리 듣기가 말하기 전부터 꺼려지는 것이다.
지난주 목요일 미국 문화유산에 대한 발표가 우리에게 과제로 주어졌다. 나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옆자리에 앉은 베트남 아저씨가 알려준 웹사이트에 들어가 온몸과 마음으로 말하기를 거부하는 과격한 스크롤. 여러 문화유산 가운데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하면서 지불한 수표가내 눈길을 결국 사로잡는다.
수표 사진,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판 이유, 미국이 알래스카를 산 이유, $7.2 million (1868)=$129 million (2023), 미국에서 지금 제일 비싼 집 $295 million, 디날리 산 사진, 우리가 페어뱅크스에서 본 오로라 사진, 매사추세츠에서 본 오로라 사진으로 둘째가 일요일밤에 구글 슬라이드를 만들어 주었다. 자, 그렇다면 난 이제 이걸로 교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일 준비만 하면 돼.
여러분, 시작하기 전에 고백할 게 있어요. 이 슬라이드는 제가 일요일에 하루종일 4학년 짜리 아들한테 떼를 써서 완성한 겁니다.
$^@%(fdjhgdkljdlkhjgly0p95%&^*&(&% 깔깔
어떤 언어로 스스로가 유창한지 아닌지는 편안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불필요하게, 거리낌 없이 지껄이고, 뒤돌아서면 기억도 나지 않는 대화의 빈도로 느낄 수 있지 않나 한다. 이 정도의 언어생활을 영위하려면 한 사람의 무수하고도 불완전한 문장을 인내하고 받아줄 누군가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해, 나의 모국어, Mother tongue, 과연 한국어는 사랑인 거죠. 그리고 여기서 지칭하는 엄마는 존재의 성별과 존재간의 관계를 초월할 수밖에.
발표를 마친 내게 밀레니얼 러시안이 다가와 말한다. 부럽네, 나도 올해는 오로라를 꼭 봐야겠어. 아니, 그러면 일단 이 앱부터 깔아야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