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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와 시시비비

by 준혜이 Mar 03. 2025

    스노 보더가 내 뒤로 파도처럼 밀려부딪치더니 내 위로 자신의 몸을 와락 쏟으며 넘어진다. 종이가 구겨지는 듯한 격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는 순간엔 원래 눈이 저절로 감기는 건지 눈에 뵈는  없고. 다만 스키복 부스럭 거리는 소리,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감각과 다른 사람 팔이 몸 안 쪽으로 숙여진 내 고개를 감는 느낌만이 여태 남아있다. 스노보드에 두 발이 묶인 채로 눈 위에 주저앉아 미안하다 자꾸 사과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해준다. 긴 슬로프를 내려오는 내내 뒤에서 날 주시하며 스키 타던 하에게도 그렇게 얘기한다. 하의 도움으로 몸을 완전히 일으켜 저기 코 앞에서 우릴 기다리는 남편들과 아이들에게로 슬슬 내려간다. 괜찮다는 내 대답과 상관없이 스노 보더에게 화가 나 어쩔 줄을 모르는 세 어른을 고글 뒤에 숨긴 눈동자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 세상의 막내가 되고 싶단 내 오랜 소원은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이루어진다고 믿게 된다.


    나를 제외한 세 어른은 우리가 다시 먼 길을 미끄러져 내려갈 마음 상태가 될 때까지 스노 보더의 무능력과 부주의, 그리고 나의 결백에 대해서도 헬멧 쓴 머릴 모아 서로 대화한다. 이건 그 사람이나 나나 눈 덮인 산길에서 피할 길이 없어 흔히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나고만 사고일 뿐이라 여기며 마음 편한 나와 달리 흥분해 버린 저 사람들은, 당사자 아닌 목격자로서 예상치 못한 심적 타격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누군가의 잘잘못을 명확히 가려낸 뒤에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모두의 불안에게, 어떠한 결과에 따라 누가 어떻게 임질 것인가가 중요한 그들의 직업적, 일상적 세계로부터 비롯되었을지 모를 단호함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과 함께 무한한 애정바칩니다. 이 날이 그리울 나중을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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