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노 보더가 내 뒤로 파도처럼 밀려와 부딪치더니 내 위로 자신의 몸을 와락 다 쏟으며 넘어진다. 종이가 구겨지는 듯한 충격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는 순간엔 원래 눈이 저절로 감기는 건지 눈에 뵈는 게 없고. 다만 스키복 부스럭 거리는 소리,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감각과 다른 사람 팔이 몸 안 쪽으로 숙여진 내 고개를 휘감는 느낌만이 여태 남아있다. 스노보드에 두 발이 묶인 채로 눈 위에 주저앉아 미안하다 자꾸 사과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해준다. 긴 슬로프를 내려오는 내내 뒤에서 날 주시하며 스키 타던 하에게도 그렇게 얘기한다. 하의 도움으로 몸을 완전히 일으켜 저기 코 앞에서 우릴 기다리는 남편들과 아이들에게로 슬슬 내려간다. 괜찮다는 내 대답과 상관없이 스노 보더에게 화가 나 어쩔 줄을 모르는 세 어른을 고글 뒤에 숨긴 눈동자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 세상의 막내가 되고 싶단 내 오랜 소원은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이루어진다고 믿게 된다.
나를 제외한 세 어른은 우리가 다시 먼 길을 미끄러져 내려갈 마음 상태가 될 때까지 스노 보더의 무능력과 부주의, 그리고 나의 결백에 대해서도 헬멧 쓴 머릴 모아 서로 대화한다. 이건 그 사람이나 나나 눈 덮인 산길에서 피할 길이 없어 흔히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나고만 사고일 뿐이라 여기며 마음 편한 나와 달리 흥분해 버린 저 사람들은, 당사자 아닌 목격자로서 예상치 못한 심적 타격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누군가의 잘잘못을 명확히 가려낸 뒤에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모두의 불안에게, 어떠한 결과에 따라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가 중요한 그들의 직업적, 일상적 세계로부터 비롯되었을지 모를 단호함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과 함께 무한한 애정을 바칩니다. 이 날이 그리울 나중을 기대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