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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과 현장 학습

by 준혜이 Feb 27. 2025

    캐나다 학생들에게 2월 방학은 없으므로, 우린 두 나라의 학제 차이 사이로 평온히 누릴 인적 드문 시간과 공간만을 그린다. 그런 기대로 평일 오전 스키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금세 도착한 스키장 주차장에 줄지어 늘어선 스쿨버스 여러 대 뒤에서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브레이크에 지긋이 발을 내려놓은 , 아, 맞다. 학교 다닐 때 겨울에 스키장으로 소풍 가지. 드넓고 눈 덮인 산중에 단지 우리뿐일 거란 예상을 뒤엎는 이 장면. 본인이 언제 맨 처음 스키 타는 법을 배운 건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던 남편의 최신 궁금증이 저절로 해소되는 그 순간.

    우리 앞에 줄 선 저 모든 학생들이 스키 장비나 스노 보드를 다 빌려 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머지않아 우리가 가혹한 새치기를 저지를지도 모를 거란 조바심에 빠져드는 찰나, 어디선가 누군가 나타나 우리를 친히 스키 부츠로 가득 찬 방 안에다 구원해 놓는다. 동굴 같은 그 공간 속을 메아리치는 수많은 아이들의 들뜬 영어, 불어를 배경음 삼아 새 스키장에서는 지난 곳에서와는 다른 사이즈의 새 부츠를. 아니, 전에 본 적 없는 데지만 이미 다른 장소로 경험해 본 활동을 할 건데도 또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낯설기만 한 이 감각은, 내 남은 미지한 삶의 활기로 받아들이면 되겠니.

    지난날 소년 친구 엄마 아빠의 한나절 수고로운 가르침이 거의 다 사라져 버린 몸으로 가족들과 어져 내려오기 가장 쉬운 슬로프를 나 홀로 굴러 미끄러져 다닌다. 리프트에서 내리다 앞으로 똑바로 고꾸라져 안경테를 부러뜨리고 오른쪽 안경알을 눈 위로 떨어뜨렸지만 곧바로 줍는다. 스키 타고 추월하는 어떤 남자애한테 속도감 넘치게 욕을 먹는다. 이렇듯 화통하게 통제불능한 하루하루가 결국에는 나로 뭘 이루나. 그 와중에 잠시 마주치는 우릴 온통 뒤섞나, 이 세계를 전부 새로 지우나. 스키의 묘미는 과연, 신체를 기계처럼 반복 조작할 정확한 시점에서의 무게 중심 이동에 있는데 아무래도 나의 핵심은 산만.  겨울이 봄으로 다 녹아내리기 전에  선생님 다시 찾아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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