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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와 두 선생님

by 준혜이 Feb 17. 2025

    전에 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운동 기술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을 정도로 연마하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시간, 비용과 수고를 들여야 하는지 일단 시작해 봐야 알지. 토요일 새벽 5시 30분 온 가족이 잠이 덜 깬 채로 추위를 뚫고 집 밖을 나선다. 후이 가족과 뉴햄프셔 무슨 스키장에서 아침 7시 30분까지 만나기로 해서. 이 약속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을까 봐 금요일 밤 미리 집을 떠나 스키장 근처 호텔에 먼저 도착해 있으려고도 계획해 보았으나, 아니, 중년의 위기 스키 입문자에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과 비용을, 어떤 누구의 수고를.

    스키장에서 빌린 장비를 모두 착용한 뒤, 오늘 내 스키 선생님, 소년 친구 엄마, 하에게,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아빠들이 아이들을 다 데리고 더 높은 곳으로 떠나버린 야트막한 눈 언덕 위에서 우리의 수업은 시작된다. 타인의 몸을 스키 장비와 협력해 제대로 운용하도록 돕기 위해 그가 내게 쉴 새 없이 건네주는 말과 거침없이 선보이는 과장된 동작 세례를 오롯이 홀로 받으며, 내 몸은 통제된 속도와 방향으로 잘 미끄러져 내려오는 듯하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Sorry, I suck at teaching. 나 집에 가고 싶다고.

   리프트비 냈잖아, 한 번은 타야지.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후이가 외친다. 그 옆에 서서 날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은,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이 말로 자연스럽게 하로부터 나를 넘겨받은 후이의 스키 레슨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가장 쉬운 코스를 어렵게 내려오는 내내 이어진다. 쌓인 눈 위로 얼굴을 처박고 넘어져 엎드려 있는 내 등에다가 후이가 It’s alright. No shame.이라고 말해주자마자 밀려드는 수치심이란. 두 번의 출산으로 타인 앞에 무방비하게 드러난 내 신체에 관한 수치심 역치는 무한대로 높아졌다 자부해 왔지만 그건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에 한해서였다. 이런 내 처지와 상관없이, 내게 운전은 가르칠 수 있었어도 스키 타는 법은 가르쳐주지 못하는 남편이 우리 뒤에서 가끔 넘어지면서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온다. 안 괜찮으면 말해. 쉬었다 가게. 후이가 물어볼 때마다 진심으로 괜찮지 않으면서도  밖으로 나오는 말은 매번 난 괜찮아. 어쩌면 이제 막 걸음마를 떼려던 시기의 내가 자꾸 넘어졌다 일어나면서 느꼈을만한 희열도 이런 능력과 무능력의 불협화음, 가능성, 잠재력, 스스로에게 걸어보는 기대였.

   하와 후이의 수고에 보답하고자 모두와 헤어져 자율학습에 돌입한다. 두 사람의 목소리와 시범 스키를 끊임없이 떠올리면서 굽힌 듯 만 듯한 무릎각을 유지한 채, 몸의 무게 중심을 오른발 왼발 각각의 바깥 발날, 안쪽 발날, 엄지발가락, 새끼발가락, 발 뒤꿈치로 번갈아 이동해 본다. 발바닥과 마음이 이렇게 정교하고 바쁘게 조작되고 있을 때, 이리저리 눈밭에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내 모습은 형용사 무신경한, 우아한.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슬로프를 다 미끄러져 내려왔을 때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와 같이 서서 나를 촬영하는 중인 후이를 마주한다. 훌륭한 선생님의 미덕은 요놈 봐라, 기특해하는 한편 다음 단계를 철저히 지시하는 것. 이번엔 더 빠른 속도로 크게 좌우로 회전해서 내려와. 우리 집에 언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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