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라인가우 페스티벌

비스바덴, 2019년 8월 29일 20시

by kay

독일은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하면 떠오르는 즉각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독일은 ‘그 무엇인가’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않았었다. 지금은 바로 떠오르는데, 그것은 바로 ‘네모’와 ‘대칭’이다.



이렇게까지 직사각형을 사랑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사진을 찍으면서 정말 감탄했던 사실 중 하나가 디지털 카메라로 초점을 맞출 때 화면에 보이는 그리드(선)에, 화면에 담기는 거의 모든 건물들이 착 달라붙는다는 것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핸드폰을 갖다대는 곳마다, 물건과 건물들이 ‘차렷’ 자세로 대기 중이었다. 거대한 오페라하우스든, 동네 마트의 초콜릿 진열대든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아파트나 큰 건물들도 다 네모고, 다 대칭이야”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한국의 아파트나 큰 건물이 그리드에 ‘들어맞는’ 정도라면, 독일 건물들의 네모와 대칭은 카메라의 그리드가 ‘오히려 기가 죽은 것 같은’ 느낌? 훨씬 날카롭고 매서운 직각의 느낌이다.


비스바덴(Wiesbaden)의 시장교회(Marktkirche Wiesbaden)

그리고 여행의 초반에 이러한 점을 가장 묵직하게 내게 알려준 건물이 비스바덴(Wiesbaden)의 시장교회(Marktkirche Wiesbaden)였다. 1853년에서 1862년에 걸쳐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벽돌 건물은 당시 나사우 공국(Duchy of Nassau)에서 가장 큰 벽돌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그 대칭성과 한 톤 내려앉은 색감이, 내게는 ‘독일식 아름다움의 적절한 예’로 느껴졌다.



이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여유가 느껴지는 동네 비스바덴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회는 ‘좌석 선택의 중요성’을 내게 알려준 연주회가 되었다. 콘서트에 가는 것이 업(業)이다보니, 좌석 선택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프로그램을 확인할 때, ‘오케스트라 반주이겠거니’ 넘겨짚은 게 화근이었다. 또 하나, ‘가격으로 위에서 두 번째 티어(범위)면 어느 정도 음향은 보장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 두 번째 실수. 그렇지만 항변해본다. 대(大)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연주한다는데, 최소 40명 이상의 앙상블을 기대한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네?

물론 연주자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실내악단(kammerorchester)’이라고 표기되어있긴 했지만, 관악기가 하나도 없는 11인의 현악 연주자들과 함께 한 쇼팽 협주곡은 홀의 중간에서 듣기에는 굉장히 소리가 작았다. 프로그램북에 ‘이 연주는 녹음되어 방송될 예정입니다’라고 써 있었고, 또 무대 위에도 마이크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섬세한 앙상블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람들로 꽉 찬 1350석 규모의 홀 중간에서는, 이 소리들이 그렇게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아쉽게도...



그런 아쉬움은 사실 연주가 끝난 후, 다 풀리긴 했다. 해외 공연에서 팬들과 좀더 편안하게 얼굴을 마주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공연이 끝난 후 30분 정도 ‘사인회가 있으려나’ 서성이던 한국 관객들 앞에 단정한 모습으로 피아니스트 ‘성진 초’가 나타난 것이다.


'성진 초'

함성소리와 핸드폰 카메라 셔터 소리, 그리고 웅성거림 속에서 피아노 연주자 조성진은 자신의 CD에 사인을 해주고, 셀카를 함께 찍고, 미소를 보내고, 꾸벅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후에 여러 종류의 SNS를 돌아다니며 이날 연주와 관련된 코멘트를 찾아보다가, 사진으로 추정해봤을 때 앞 10줄 이내에 앉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인스타그래머가 감동의 후기를 올린 것을 발견했다. 나도 다음에 쿠르하우스 비스바덴(Kurhaus Wiesbaden)에서 독주나 실내악 공연을 본다면 반드시 10줄 이내를 노리리라, 결심하게 만드는 결과였다. 물론 헤비(heavy)한 프로그램을 침착하게 소화해낸 조성진의 모습은 긴 시간, 충분히 볼 수 있었으며, 프로그램북 상으로는 지휘가 바이올리니스트 라도슬라프 숄츠(Radoslaw Szulc)로 되어있었지만 피아노와의 호흡이 중요한 ‘협주곡’인 만큼, 결정적인 부분에서 왼손으로 약간의 지휘를 하는 조성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어서 기쁘긴 했다. 앙코르도 두 곡이나 들었고. 만족하기.

만족하기.


이제는 한 번 기차를 갈아타고 드레스덴으로 갈 시간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A와도 헤어져 혼자만의 길을 떠나야 할 시간. 비스바덴에서 함께한 마지막 식사는 시장 교회 근처의 카페였다. 사람은 둘이지만 빵은 네 개. 참깨나 굵은 소금이 뿌려져 있는 빵, 혹은 심심한 얼굴로 그냥 있는 빵들이 어느 것이나 ‘오리지널’해 보여서, 쉽게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서서히 독일 빵맛에 빠져드는 기분! 하나만 먹어도 든든하고, 소화도 엄청 부드럽게 되는 것이 나름 매력있었다. 조미료나 드레싱도 과하지 않아 좋았다.



커피는 어느 집에서나 담배향이 많이 났는데, 끽연(喫煙) 문화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 역사의 ‘던킨(Dunkin)’에서 커피를 사서 기차에 올랐다. 나는 이제 드레스덴으로 간다.

사진3-1.JPG 연주가 끝난 후 박수를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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