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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물리에 Feb 13. 2024

가끔은 숲 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지금까지 숲 속에 숨고 있었구나


저자의 일상이 차분하게 담겨있어 숨고 싶을 때 읽으면 마음이 한 결 나아지는 책

스트레스가 쌓여 작은 일에도 울컥하고 뾰족해질 때,

따뜻한 차 한 잔과 조용한 선율이 담긴 노래를 틀고 이 책을 천천히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처음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히 숲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서였다. 숲 속으로 숨는다고 하니 '진짜' 숲으로 '실제로' 숨지 않더라도 저자에게 숲에 대한 이야기보따리가 많을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다 읽고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진 이유는 숲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서가 아니다(물론 저자가 나고 자라며 만나온 다양한 식물이 소개된다).


몇 해전, 양재천 풍경


mbti를 추측해보자면 isfp나 infp일 것 같은 저자의 일상이 부드러운 말투로 차분하게 담겨 있다. 특별한 일상은 아니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 읽어갈수록 마음이 편해져 숨고 싶을 때 읽으면 마음이 한 결 나아지는 책이라서 모두와 공유하고 싶어졌다.


스트레스가 쌓여 작은 일에도 울컥하고 뾰족해질 때, 따뜻한 차 한 잔과 조용한 선율이 담긴 노래를 틀고 이 책을 천천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차와 노래 그리고 천천히 읽는 것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다면 천천히 읽는 것을 권한다.

평소에 책을 꽤 빨리 읽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느리게 읽혔다. 일부러 느리게 읽은 건 아니고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저절로 속도가 늦춰졌다.


체했지만 밥을 먹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밥알 하나하나를 꼭꼭 씹는 느낌이랄까.


저자의 성향이 이미 책에 녹아져 있어서인지 천천히 문장을 따라 한 장 한 장 읽어졌다.



저자는 숲을 좋아하고 나무, 풀, 꽃에 편안함을 느끼기에 그곳으로 숨고 싶어 한다. (지독한 길치라 지도는 전혀 못 보지만 길거리에 가로수 종류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한 번 본 꽃은 잊지 않아서 새로운 꽃을 발견하여 학계에 발표하기도 했다)


책을 넘겨갈수록 하나의 생각이 맴돌았다. '나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집'이 떠올랐지만 금방 고개를 젓게 되었다. 나만의 숲인 '아뜰리에'도 숨을 공간이지만 요즘은 여기 오면 자꾸 일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잠시 탈락이다.


최근에 나는 '거리'로 숨는다.


작업실을 옮겨 새로운 업종을 더해 일을 할 계획을 세웠는데 막상 실천에 옮기려니 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 이런저런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생각으로 무거워진 머리를 얹고 실내에 앉아있는 것이 괴로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꾸만 걷고 있다. 자꾸만 거리로 숨게 되었다.


그래도 요 며칠 찬바람이 불어 저절로 머리가 차가워지니 좋다.


어제도 2시간을 걸었다. 퇴근시간 한참 전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퇴근시간이었다. 어딘가를 향하는 뚜렷한 목적 있는 걸음들 사이에서 그냥 걷는다. 걷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고민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차가워진 머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제도 그렇게 거리에 잘 숨었다가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이 책을 마저 읽고 이렇게 공유를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묻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디로 숨나요?


지금 대답을 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다만, 숨을 곳이 필요한 때가 오면, 어디에 숨을지 생각해야 하는 때가 오면

이 글을, 이 책을 떠올리면 좋겠다.

책을 읽다가 보면 마음이 가라앉아 어디에 숨을지 생각이 날 거라고 미리 응원한다.


김영희 에세이 <가끔은 숲 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최근 거리로 숨으며 본 장면들




+

2024년 봄을 목표로 회사 설립을 준비하며 결정해야 할 것들이 잔뜩 놓여있다. 힘들어진 마음은 티를 팍팍 내며 어디론가 자꾸 숨고 싶어 했다. 이런 마음 탓에 요 근래 김영희 작가의 책이 자주 마음에 동동 떠다녔다.

결국 식물리에서가 마감일인 오늘, 책을 다시 읽지 못하고 지난 2022년 읽고 썼던 글을 살짝 정리해서 올린다.


지난 글을 읽으면서 하나 알게 되었다. 숨고 싶었던 2022년에 나는 단순히 거리로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무작정 거리에 숨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무와 풀과 그에 따른 새와 작은 동물, 곤충이 있는 양재천 근처로 자주 숨었다. 굳이 집에서 30분 이상 떨어진 곳에 숨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천안으로 이사 온 지금, 숨고 싶은 곳으로 떠올리는 곳은 집 근처 호수공원이다. 이걸 생각하면 내가 숨고 싶은 곳은 거리가 아니라 작가님과 같은 숲 속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오늘을 정리하며 내일은 해야 할 일들을 서둘러 마치고 잠시 숲 속에 숨었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나도 숲 속에 숨고 있었구나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숨을 곳을 마련해주는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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