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 ;
저 숲 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
책을 읽기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급히 시계를 봤다. 책을 놓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6,7살쯤의 어린 카야는 엄마에게, 오빠, 언니들에게 차례로 버려진다. 퇴역군인으로 술과 폭력을 반복하는 아빠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가 카야만 남긴 채 떠나갔다. 그리고 결국 몇 년 뒤, 아빠 역시 여전히 어린 카야를 두고 돌아오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카야는 습지에 기대 외로움과 싸우며 생존해 나간다.
너무 일찍 외로움을 알아버린 카야의 삶을 보고 있으면 참 애달픈데, 이런 카야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기대는 습지의 풍경 묘사는 너무 생생하고 아름다워서 읽는 내내 마음이 어쩔 줄을 몰랐다.
습지소녀인 카야의 성장기이자 그녀가 얽힌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 책을 식물리에서가를 통해 추천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습지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때문이다.
p.49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주었다. ...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낯선 습지의 생태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는 이유는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흔 살에 첫 소설로 이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썼다. 그전까지 그녀는 생태학자로 동물행동학 박사로 몇십 년 동안 동물들과 그 보금자리인 '진짜 습지'를 보고 연구해 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애정'을 더해 습지를 묘사하는 소설을 썼으니 첫 소설이지만 진심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습지라는 공간이 낯선 독자들에게도 그 아름다움이 전해지고 책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p.13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소설은 1부 습지, 2부 늪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고백하자면 소설에서 전달하려는 습지와 늪의 차이를 아직 명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생태적으로 습지와 늪을 구분하자면 습지가 더 큰 개념으로 늪이 습지에 포함된다.
늪 ;
수심 3~5m 이하의 늘 물이 고여 있는 곳으로 연못보다는 크고 호수보다는 작다. 습지와도 동의어로 쓰이나 항상 물이 고여있는 곳으로 습지에 포함되는 구역이라고 볼 수 있다.
(식물리에 용어 정리)
습지 ;
영구적 혹은 일시적으로 습윤한 상태를 유지하고 그러한 환경에 적응된 식생이 서식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국립생태원, 습지의 정의)
소설 속 살인사건의 무대라는 것이 잊힐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 습지가 궁금해졌다. 마침 지난 2월 2일은 '세계 습지의 날'로 습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정된 날이다. 책에서도 언급되긴 하지만 실제로 습지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궁금해졌다.
습지는 일반적인 땅과는 다르게 물이 고이거나 흘러감으로써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분을 가지게 된 땅이다. 때문에 미생물부터 수서곤충, 어류, 조류 등 생태계 구성원들에게 넉넉하게 먹이를 공급하는 공간이다. 이로 인해 습지에는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나 이 시기에 찾아오는 철새들에게는 꼭 필요한 장소이다.
습지는 동물들에게만 중요한 곳이 아니다. 습지는 사람과 관련된 환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습지는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으로 홍수시에 유량을 조절한다. 그리고 습지의 토양의 미생물과 식물들이 습지로 흘러들거나 거쳐가는 물을 정화해 준다. 또한 기후위기 원인으로 지목되는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바다습지는 온대지역의 울창한 숲보다 2배 이상 탄소를 흡수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습지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물과 다양한 동식물종이 서식하는 곳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며, 탐조인들에게는 여러 종의 새들을 볼 수 있는 보물 같은 장소이다.
국내에는 환경부가 지정한 습지보호구역을 포함하여 여러 형태의 습지가 있는데, 그중 기회가 된다면 순천만습지를 꼭 가보길 권한다. 습지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식물인 갈대밭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어느 계절에 가도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두 번은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은 줄거리를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책에 담긴 풍경을 읽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번 여름, 순천만으로 여행을 가보려 한다. 순천만습지의 여름 갈대들은 초록파도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사그락사그락 바람에 너울대며 춤추는 갈대를 보고 들으며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기회가 된다면 습지가 아니더라도 꼭 자연 속에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곳이 더 소중해질 테니 말이다.
참고자료
국립생태원, 습지보전 - 습지의 가치
순천만습지 홈페이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