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인 더 후원'도 읽고 싶어요.
p.72
꽃 대신 꽃 그림을
... 그러나 꽃은 아무리 아름답고 향기로워도 지기 마련이다.
'꽃 그림'은 지극히 한시적인 꽃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지속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대리물이었으며
동시에 내 정원의 꽃을 기록한 증서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멋진 수집품이 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데에는 필요한 것들이 많다. 체력과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땅'이 필요하다.
땅도 시간도 그리고 이제는 점점 체력도 없어지고 있으니 이번 생에 가드너가 되는 건 포기해야 할까?
16세기 후반 네덜란드는 다른 대륙들과 교류로 외래 식물종들이 유입되면서 정원이 일종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튤립 버블'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는데, 튤립 구근 한 개의 가격이 집 한 채와 맞먹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된 '꽃 정물화'는 결국 17세기 무렵에는 네덜란드에서 하나의 독립된 장르가 되었다고 한다.
정원 대신 정원 책을
지금 당장 흙이 있는 정원을 가꾸기 어렵다면 네덜란드에서 그랬듯이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정원 생활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내 정원을 갖는 데에는 책 한 권과 안락한 의자만으로 충분하다. 여기에 책과 어울리는 음악까지 더해진다면 굉장히 호사스러운 시간이 되는데, 이런 시간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한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강하 작가는 '클래식 인 더 가든'에서 정원과 관련된 그림, 그리고 함께 들으면 좋은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표현을 따르면 '음악, 정원, 그림의 삼중주'라는 이 책은 작가의 전문 분야가 음악인지 조경인지, 그림인지 잊게 할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소개해 준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이 번거로울까 독자들을 위해 각 페이지에 QR코드를 넣어두었다. QR코드를 찍으면 유튜브 영상으로 연결되어 바로 음악을 들으면서 책의 이야기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연결된 유튜브 영상이 삭제된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유명한 클래식 음악이라 다른 어플에서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어 불편하지 않았다.
클로드 모네와 나의 청춘
그림 볼 줄 모르는 내가 첫 파리 여행에서 봤던 모네의 수련연작은 작은 충격이었다. 혼자 공원을 걷다 긴 행렬이 보여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곳은 오랑주리 미술관이었다. 휘어진 벽을 따라 길게 그려진 흐릿흐릿한 그림. 그렇게 긴 그림도 처음이었지만 뭘 그린 지 잘 모르겠는 희뿌연 그림을 보려고 사람들이 긴 줄을 서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그림에 마음을 뺏겼었나 보다. 그다음 여행도 그 다음다음 여행도 모두 파리행 비행기를 탔고,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우연이겠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첫 그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련 연못>이라 알려진 그림이다. 실제 지베르니에 방문했을 때 그림과 너무 똑같은 모습이라 놀랐는데, 모네는 이 풍경에 있는 일본식 다리와 버드나무, 연못의 수련들을 전부 다 다른 초록으로 그려냈다. 김강하 작가는 그림을 보며 오페라 <라크메>의 음악을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이 그림을 좋아하는 나도 나름의 노래 한 곡을 추천한다.
Carla Bruni의 Ma jeunesse(나의 청춘)이라는 노래이다. 밝은 곡 같기도 하고 차분한 곡 같기도 한 이 노래는 모네의 수련 그림들과 닮았다. 모네의 시선이 닿았던 연못은 밝음과 어둠이 뒤섞여 그림에 어느 부분을 보느냐에 따라 또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늘 다르게 보인다. 이 노래도 어느 날에는 통통 튀는 곡이 먼저 드릴 때도 있지만 어느 날에는 가사만 귀에 들어올 때도 있다. 이 노래가 처음이라면 먼저 노래를 그냥 듣고 나중에 가사 뜻도 한 번 찾아서 들어보길 추천한다.
p.51
장미에 버금가는 것으로 ㅁㅁ이 있습니다. ㅁㅁ은 부드럽고 맑고 순수합니다.
화사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항상 우리에게 뭔가 낯선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귀족적인 자태도 흐르죠.
-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소설 <늦여름> 중에서
한국과 아시아 지역이 원산인 이 꽃나무는 18세기 선교사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다.
그 선교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인데, 추운 날씨에도 도도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으로 19세기 유럽 여성들의 사랑을 가득 받았다고 한다. 아주 비싼 값에도 부케로 들고 싶다는 말이 꽤 인상 깊다.
파리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무척 좋아해서 자신의 브랜드 로고에도 사용하였고, 죽어서도 이 꽃으로 뒤덮인 관에 묻혔다고 한다.
이미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이 나무는 바로 동백꽃이 피는 동백나무이다.
Camellia japonica L.
차나무과 동백나무
상록활엽 소교목
개화시기 1~4월
꽃말 ;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어릴 적 우리 집 베란다 한편에 늘 자리했던 동백나무는 매년 겨울이면 새빨간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그 꽃을 보고 자라서인지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뭐냐고 물으면 늘 거침없이 동백나무라고 말해오곤 했다. 그래서 동백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나면 매우 반가운데, 이 책에는 전에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어 더 흥미로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
가난한 작가는 동백꽃을 좋아했던 여인과의 사랑을 못 잊어 그녀가 죽자 <동백꽃 여인>(우리나라에는 일본식 한자번역인 '춘희'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을 쓴다. 그리고 그 소설을 바탕으로 올려진 동명의 연극을 본 베르디는 당시에 자신도 역시 힘겨운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너무나 큰 공감을 한다. 그리고는 이에 영감을 받아 유명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탄생시킨다.
이처럼 음악과 그림, 문학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있어 서로서로 작품의 영감을 주기도 하였으며 예술의 주된 소재 중 하나는 꽃과 나무, 자연이었다. 문화예술적으로 풍부했던 당시의 음악이나 소설, 그림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이 읽힌다. 그리고 자꾸만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음악을 찾아 듣게 되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되어버린다. 생각보다 시간 여유를 넉넉하게 잡고 하나의 이야기씩 읽어나가길 추천한다.
국악 인 더 가든
아무래도 작가가 클래식 음악을 주로 이야기하다 보니 소개된 그림과 정원은 전부 외국의 것이었다. 서양조경사에 흥미가 있다면 재미있게 조경상식을 알 수 있는 참고서적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을 때 즈음 한국과 도양의 정원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언젠가는 이 책의 다른 버전인 '국악 인 더 후원'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