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위한 밀원정원을 꿈꾸며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시간은 4년뿐이다.
- 아인슈타인-
전직 역사교사이자 공연전문 최면사인 '르네 톨레다노'
그의 '영혼의 가족'으로 밝혀지는 현재 소르본 대학 학장인 르네의 은사 '알렉상드르 랑주뱅'
알렉상드르의 딸로 미래의 드보라 히람이 되는 '멜리사 랑주뱅'
인류를 구할 예언서 <꿀벌의 예언>을 찾아서 전생과 현생, 미래를 넘나드는 세 주인공의 힘겨운 여정을 함께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꿀벌이 무척 소중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우여곡절은 르네의 최면 공연에서부터 시작된다.
르네는 파트너와 함께 전생을 보는 최면공연을 주로 하는데 하필 이 날은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미래를 보는 최면 공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 관객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지구와 인류의 끔찍한 미래를 경험해 버린다.
30년 뒤인 2053년 12월 25일, 지구에는 인구 150억 명이 43.7도, 습도 4%라는 끔찍한 날씨 속에서 말 그대로 '숨 막히게'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식량, 물 부족 등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버린다.
(참고로 2024년 세계 인구는 약 80억 명이며, 목욕탕에 가면 가장 뜨거운 열탕의 온도가 대개 43도이다)
끔찍한 미래를 외면할 수 도 있겠지만 역사학자였던 르네는 미래를 구하기 위해 최면을 통해 자신의 미래인 63살의 르네를 만나러 간다. 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꿀벌의 예언'이라는 예언서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을 듣게 되면서 그의 여정이 시작된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르네가 현재에서 듣게 되는 국제뉴스는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문제, 종교적 이념 다툼으로 인한 전쟁 소식 등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뉴스의 내용은 소설이지만 전혀 가공된 것이 아니다.
저자 베르나르는 우리가 지금 2023년에 겪는 현실의 뉴스 내용을 소설에 그대로 반영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러면서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인 '꿀벌의 실종'에 대한 심각성을 더 부각한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꿀벌'에 대한 관심보다는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많고 많은 곤충 중에 '왜' 꿀벌을 소재로 삼았고, 이를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 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의 첫 데뷔작은 『개미』라는 소설인데, 공교롭게도 개미와 꿀벌은 곤충을 분류하는 체계에서 같은 분류로 구분되는 '벌목과'의 곤충들이다.
다른 곤충들과는 다르게 '여왕벌, 여왕개미/일벌, 일개미'라는 신분이 나눠져 있고, 사회성을 가지고 집단생활을 하며, 일종의 호르몬과 약속된 행동 등을 통해 같은 종끼리 소통이 가능한 점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공통점이 있는 개미와 꿀벌이기에 베르나르가 소설 『개미』 이후에 꿀벌을 소재로 또 어떤 마법 같은 이야기를 풀어냈을지 너무 궁금했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으며 꿀벌의 중요함을 이런 식으로 풀어낸 저자의 능력이 감탄했다.
베르나르가 전달하는 '꿀벌의 소중함'은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며, 소설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꿀벌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려 한다. 식물리에 관점에서 덧붙인 글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왜 그토록 예언서를 찾고자 노력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생태계는 먹이사슬이라는 연쇄작용으로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미생물이 흙을 분해하고, 식물들은 그 흙에서 영양분을 섭취한다. 그리고 초식동물들이 식물의 잎과 열매를 먹으며 육식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그리고 인간은 식물도, 동물도 섭취하는 상위 포식자이다.
이 과정은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질서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과정이 생략되었다.
바로 끊임없이 소비되는 식물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어 번식을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심지어 두 번의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데, 한 번은 꽃가루를 옮기는 과정(이를 '식물의 수분'이라 한다)이고 다른 한 번은 만들어진 씨앗을 퍼뜨리는 과정이다.
꽃가루를 옮기는 과정에서는 몸에 꽃가루를 묻히며 이 꽃, 저 꽃을 돌아다녀 줄 작은 곤충과 새들이 필요하다. 때로는 바람과 빗물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다. 그리고 일부 과수원에서는 이 역할을 사람이나 로봇이 붓을 들고 진행한다. 이렇게 꽃들이 어떤 방식으로 수분되는지에 따라 충매화(곤충이 수분의 매개체), 풍매화(바람이 수분의 매개체) 등으로 구분한다.
만들어진 씨앗이 옮겨지는 과정 역시 다양하다. 씨앗이 담긴 열매에 날개가 붙어(주로 단풍나무류) 바람에 날려가거나, 새나 동물이 열매를 먹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또는 '도깨비바늘'처럼 동물의 몸에 붙어 옮겨진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먹이자원인 식물은 이런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데, 이 중 우리가 직접 먹는 음식의 1/3이 충매화로써 곤충에 의해 꽃가루가 옮겨지는 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꽃가루를 옮겨 주는 대표적인 곤충인 꿀벌이 사라지면 단순히 꿀만 못 먹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사과도, 복숭아도 먹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식물을 사료로 먹는 가축들의 생산, 공급량에도 영향을 끼쳐 고기나 유제품도 얻기 힘들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 베르나르도 꿀벌이 사라진 미래에는 농업생산량이 감소하여 부족해진 식량을 두고 국가 간의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고 묘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꿀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소설에서도 언급되지만 꿀벌들은 복합적인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
생태계에서 어떤 종의 개체수가 비정상적으로 감소하는 이유는 크게 4가지가 있다.
1. 외부에서 유입된 천적(특히 외국)
2. 기후변화로 인한 생활환경변화
3. 농약 피해
4.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꿀벌 역시 이러한 이유로 개체가 줄어들고 있다.
1. '등검은말벌'의 등장
말벌은 꿀벌과 같은 벌목과 곤충이지만 꿀이나 꽃가루보다는 주로 꿀벌을 포함한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다. 이 중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곳에서 양봉가를 위협하는 말벌이 있는데 소설에도 등장하는 '등검은말벌'이다. 실제로 소설에 나왔듯 2004년 수입된 컨테이너박스를 통해 등검은말벌의 여왕벌이 프랑스로 유입되어 프랑스뿐 아니라 인근 국가의 꿀벌들을 초토화시켰다.
이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곤충들은 천적이 함께 유입되지 않는 이상 그 생태계에서 개체가 급증하여 기존의 생태 질서를 망가뜨리며 먹이로 하는 종의 씨를 말린다.
2. 따뜻해지는 겨울과 이상기온
겨울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추위로 자연사해야 할 곤충들이 죽지 않고 있다. 그렇게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에 번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개체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간다. 등검은말벌 역시 개체수가 증가하는 데 따뜻한 겨울이 한 몫했다는 의견이 있다.
그리고 이상기온으로 인해 봄의 개화시기와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점점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이는 꿀과 꽃가루를 먹고 자라는 꿀벌들의 영양상태에도 영향을 끼쳐 꿀벌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약해지고 있다고 한다.
3. 농약 피해
사람의 농작물 재배에는 도움을 주지만, 하필 꿀벌 신경계에 치명적인 독성이 있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살충제 사용이 꿀벌을 실종시키고 있다. 이 농약들은 꿀벌에게 기억상실증을 유발하여 벌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겨 길에서 죽어가는 꿀벌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꿀벌을 죽이는 해충인 '꿀벌응애'를 죽이기 위한 농약이 오랜 연속 사용으로 인한 피해도 보고되고 있다. 응애가 약에 내성이 생기면서 죽지 않고 있어 꿀벌의 생존과 번식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4.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
도시 개발이 점점 넓어지면서 벌들을 위한 자리가 밀려남은 물론이고, 식물들이 점차 모습을 감추면서 벌들이 꽃가루와 꿀을 모으러 가는 여정도 길어지고 있다. 이로서 꿀벌들의 꿀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속담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을 때는 그 존재의 중요성이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있다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는 심각하다.
특정 종이 사라지면 먹이사슬의 연쇄반응으로 생태 질서와 구조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반응은 인간 사회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심각한 것은 그 반응이 어느 정도의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추측하고 대비하기에 현대 과학기술이 얼마나 정교한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혹여나 놓치는 부분이 있어 당장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꿀벌을 포함하여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내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어야 실천을 하고, 실천하는 목소리에 힘을 더해줄 수 있다.
꿀벌의 실종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문제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면 아직 미약해 보인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책을 써서 꿀벌의 이야기를 전하고, 누군가는 직접 도시에서 양봉을 시작하며 꿀벌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우리가 꿀벌을 위해 직접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면 직접 실천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양봉가의 활동이 궁금하면 인스타그램을 공유한다.
#벌한마리가세상을바꿉니다
https://www.instagram.com/urban.bees.seoul?igsh=MTBtYWNuNmVnajhlbQ==
그리고 올해 정원에 어떤 식물을 심을지 고민하는 분들은(고민이 끝났더라도!) 작은 공간이라도 꿀벌을 위한 식물을 심어 보는 것을 권합니다.
꽃가루와 꿀이 많아 꿀벌에게 유익한 식물을 '밀원식물'이라고 하는데 유채, 매실나무, 벚나무, 진달래, 쥐똥나무, 토끼풀 등 그 종류는 많다. 이른 봄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꿀벌들을 위한 유채와 매실나무, 그리고 따뜻한 계절 오래 볼 수 있는 진달래, 여름에도 향기 좋은 꽃이 피는 쥐똥나무까지.
봄부터 가을까지 벌들이 언제나 찾아와도 꿀을 내어 줄 수 있는 밀원정원을 꿈꾸며 아인슈타인의 말을 되새겨본다.
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시간은 4년뿐이다.
+참고한 내용들
책 <비북 Bee Book> 샬럿 밀너 지음
책 <밀원식물의 한살이 생태도감>
과학동아 생물산책 <말벌 : 한반도를 습격한 또 다른 불청객> 강석기 글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그알 요약 1302화, 꿀벌 연쇄 실종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