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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해공 Jan 13. 2021

잘 아는 것 같다가도 전혀 모르겠는 존재

야근을 하는 나의 모습, 뾰족하게 깎은 연필과 맘에 드는 카피만 있어도 만족할 수 있었던 그때

 

 나는 누구일까요? 카피라이터가 너무 하고 싶어서 뽑지도 않는 회사에 막무가내로 찾아갔던 나.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고 나니, 더는 못해먹겠다고 볼멘소리를 해대는 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나.

그런데 소모품으로 쓰이다가 버림받는 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니냐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나. 

아이디어 내면서 밤새는 게 꿈이라고 아주 자신 있게 말했던 나.

그런데 칼퇴시켜달라고, 오늘 만은 제발 제시간에 집에 가보자고 팀장님을 졸라대는 나.

'다시 광고대행사에 갈 거예요.'라고 말하는 나

'근데 카피라이터가 꼭 광고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생각하는 나.


 나도 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확고했던 나의 생각, 취향, 비전이 오늘이 되면 바뀌어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모르겠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내 길은 어떤 길인지...

내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현실을 너무 잘 알게 되어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립습니다. 그때 나에게 꿈 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거든요. 원하는 일을 하게 되면 인생이 술술 풀릴 거라는 헛된 상상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그때의 내가 지금 보다는 백배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목표지향적이고 당찬, 쪽팔림 따위는 아무래도 괜찮다며 하고 싶은 걸 해냈던 그때의 내가 말이죠.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나를 추슬러야 하겠습니다. 어디에서 '나'라는 우산을 잃어버렸는지 곰곰이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물어올 때 명료하고 자신 있게 답하려면 말이죠. 아니 그전에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려면 말이죠. 

나에 대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석해줄 AI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영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삼자의 눈으로 꿰뚫어 보는 명철한 분석력을 가진 AI요.

 이런 생각을 하는 거 보면, 아무래도 '나'에 대한 고찰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군요. ^^;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새로운 길을 떠나기 전에 '정리'는 필요하니까, 다시 달려 나갈 '용기'를 얻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과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파고 파고 또 파고들면 단순하게 답할 수 있는 그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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