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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Mar 01. 2021

멋진 하루

바람이 분다

2020 5 13 수요일 
바람이 많이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멋진 하루>. 헤어진 연인이 빌려간 350만 원의 돈을 받으려고 하루 종일 떼인 돈을 받으러 고군분투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 어떠한 특수효과도 필요 없기 때문에, 찍는데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을 듯한 느낌의 저예산 영화이다. 그러나 옛 남자 친구와 돈을 수금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서울의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묘사한 수작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별거 아닌 내용인데, 이 영화가 정말 좋아져 다이라 야스코의 원작도 사서 두어 번 읽었다.

이 영화가 얼마나 나에게 인상 깊게 남았으면, 글을 쓸 때 나의 필명을 여자 주인공의 이름인 ‘김희수’로 적었을 정도이다. 350만 원을 모두 수금한 후, 채무자였던 옛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저녁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때 영화에서 본 노을을 잊을 수 없다.

하정우 배우가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은 무능한 빚쟁이고 현실에서 만나면 주위에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겠지만, 극 중에서는 ‘밉지만 밉상은 아닌 캐릭터’이다. 그게 바로 배우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썼던 영화평이 12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쁜 남자보다 더 치명적인 건 불쌍한 남자다.


아주 가끔, 몇 년에 한 번씩 이 말이 생각나는데, 정말 오랜만에 또 떠올랐다. 정작 불쌍한 남자는 여자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 왜 불쌍한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걸까.

물론 그 ‘불쌍한 남자’에겐 전제 조건이 있다. 착해야 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야 측은지심이 생기니까.  못되고 불쌍한 남자는 없다.

일기의 제목은 ‘멋진 하루’이지만 오늘은 전혀 멋진 하루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영화평 때문에, 난 불쌍한 남자를 볼 때마다 <멋진 하루>를 떠올리게 된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게 뒤섞여 버린 듯하다. 될 대로 돼라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맥주나 마시며 오랜만에 <멋진 하루>를 보고 싶고, 주말엔 영화에 나왔던 서울의 길들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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