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에서
2020년 11월 25일 수요일
월요병을 앞둔 일요일 저녁,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단골가게 사장님이 다음 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실시로, 9시까지만 영업을 할 수 있다는 비보를 알려주셨다.
금요일에 있을 저녁 모임에 지장을 받게 된 것도 아쉽지만, 카페에서 오직 테이크아웃만 할 수 있게 된 상황도 아쉽다. 내겐 회사생활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 출근 전 카페에서 글 쓰는 시간인데, 이젠 빌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결국 아침에는 도서관 같은 칸막이가 있는 구내식당에서 글을 썼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점심 약속이 취소됐다. 예전 같으면 이럴 때 카페에 가서 파니니나 샌드위치를 먹으며 글을 썼겠지만, 이젠 갈 데가 없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구내식당에 가면 칸막이 자리에서 식사를 하며 글을 쓸 수 있겠지만, 한가한 아침과는 달리 미어터지는 점심시간에는 자리를 차지하며 글을 쓸 수 없는 여건이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인 브런치 카페에서는 카페에서처럼 가벼운 식사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이곳엔 혼자서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는 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다행히 바 자리는 비어 있었고, 아이스커피와 치킨 아보카도 샐러드를 먹으며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보냈다. 샐러드가 혼자 먹기에 너무 많았고 아몬드 치킨에서 닭 냄새가 조금 난다는 게 흠이었지만, 이곳이 제공하는 ‘공간’ 덕분에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다음날에도 2.5단계로 부서 점심이 취소되어, ‘대체 장소에서의 카페 같은 점심’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전날처럼 브런치 카페로 달려갔다. 같은 장소를 연이어 두 번 간다는 게 마음이 걸렸지만, 이번엔 오믈렛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2.5단계 첫날에는 이 ‘아지트’를 몰랐던 사람들이 어찌나 몰렸던지 40분을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나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았던 건지 바 자리도 한 자리도 없이 모두 꽉 찼다고 했다.
“2.5단계로 카페에서 먹을 수 없어서 여기에 왔는데...”
“그래서 다들 여기에 오셨습니다.”
사실 카페라고 바이러스가 전염이 되는 것도, 식당이라고 전염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결국 갈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일본식 스파게티 전문점에 갔다. 이곳도 바 자리가 있는 몇 안 되는 식당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다녀와서 소감을 남겼지만, 이곳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먹어야 맛있는 곳이다.
단품보다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는 평일 런치세트는 양도 어마 무시하기 때문에 나에게 할당된 점심시간은 먹는데 모두 소요됐다. 나는 식사보다는 글을 쓸 장소가 필요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로 부른 배를 두들기며 사무실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