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이 빛나던 순간들

by 지뉴

의욕이라고는 없는 엄마의 눈빛과 목소리에도 생기가 돌던 순간들은 분명 있었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에 정말 전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엄마는 이전 생에서 유럽의 한 귀족 가문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엄마는 미드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중세시대 왕궁이나 귀족 가문을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물에 열광 - 엄마에게 이 단어가 적합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 했다.

엄마는 특히 <왕좌의 게임> 시리즈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물론 이 작품은 허구의 세계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해 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엄마는,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타령이나 해대는 시답지 않은 국내드라마보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풍부하고, 회차마다 엄청난 물량공세로 웅장한 스케일을 선보이는 미드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국내 드라마를 폄하하는 듯한 엄마의 발언에 살짝 마음이 불편해지면서도, 한편으론 애청하는 미드 방영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가 진정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마음껏 좋다고 표현하며, 자신의 마음을 관대하게 내어주는 건강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엄마가 한창 <왕좌의 게임>의 애청자였던 그 시절, 특히 내가 기뻤던 이유는 엄마가 내 짝꿍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다정해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변화된 시선을 이끌어낸 원인이란 것이, 그 시선을 받는 당사자의 입장에선 화를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헷갈리는 것이긴 했겠지만.

아무튼, 엄마가 <왕좌의 게임>의 열혈 팬으로 머물렀던 그 기간 동안, 엄마는 마치 TV속에서만 보던 유명 연예인을 눈앞에서 보는 특별한 경험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가 말했다.


"O서방,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조프리'라는 캐릭터와 참 많이 닮지 않았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드에 나오는, 그것도 역할의 비중이 꽤나 큰, 캐릭터가 짝꿍을 닮았다니! 게다가 이름마저 '조~프리'... 귀족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듯한 달달한 발음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 길로 바로 검색창에 '조프리'를 눌러 적고는 설레는 맘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도대체 어떻게 (잘)생긴 할리우드 배우일까?!'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조프리는 나쁜 놈이었다. 비록 못나거나 사악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덜’ 잘 생긴 얼굴이었다. 내 표정이 별로였던지 엄마가 덧붙여 말했다.


"악역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야. 엄마는 이 배우 좋더라..."

조프리 역의 아일랜드 배우 잭 글리슨. 다시 보니 나름 괜찮다.^^

어쨌든 국왕이었다. 왕 앞에서 절절매는 힘없는 신하도, 귀족들에게 핍박받는 가련한 서민 캐릭터도 아닌. 왕족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인물. 캐릭터의 설명을 살펴보니,

‘… 큰 키의 미소년으로 동화에나 나올 법한 왕자처럼 생겼기 때문에 '산사 스타크'가 한눈에 반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금세 섭섭했던 마음이 회복되었다.

이후로 나는 생각날 때마다 짝꿍 앞에서 '조프리'를 언급했다. 그때 짝꿍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엄마의 눈빛이 살아있었던 또 다른 순간은, 위에 언급한 내용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에서 찾아왔다.

엄마는 한때 이해관계가 얽혀있던 지인과 소송에 휘말렸던 적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재판정에 서게 되자 엄마는 몹시도 억울해했고, 본인의 억울함을 벗기 위해 온갖 증거자료들을 수집하고 그 자료들을 어떻게 정리해서 효과적으로 활용할지 밤낮없이 연구했다. 심지어 엄마는 판사님에게 전해드려야겠다면서, 그간 지인과 있었던 일들과 본인의 심정을 구구절절하게 담은 손 편지를 쓰고 또 썼다. 퇴고만 수십 번은 했을 거다. 나는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보였다. 판사들은 손 편지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았기에.



그런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나는 신기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탐정이라도 된 듯 악착같이 증거를 끌어모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듯 판사에게 전해줄 손 편지를 살뜰히 적어 내려가던 엄마의 이글거리던 눈빛과 팔딱팔딱,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목소리에서 삶을 향한 열의가 넘쳐흐르는 것을 목격했다.

누군가를 진저리 나게 미워하는 마음과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이 엄마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았다. 아빠 앞에서 하염없이 무기력하게만 보였던 그때의 엄마가 아니었다. 나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에는 엄마가 힘든 상황을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쓰면 될까?"

"한번 읽어봐 줄래?"

"더 보태거나 빼야겠다 싶은 말이 있으면 얘기해 줘..."


엄마는 내가 엄마와 함께 해왔던 그 어느 때보다 내게 질문과 요구가 많았고, 적극적으로 먼저 말을 건넸다. 귀찮을 정도로. 엄마의 그런 모습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술주정을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시절. 초롱초롱 빛나던 눈빛의 꿈 꾸던 소녀

돌이켜보면, 그랬다.

'사랑'과 '증오'의 순간들이 엄마를 진정 살아있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다면 나와 엄마는, 사랑과 미움을 오가기에 오랜 시간 곁에 머무르면서도 서로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걸까? 어쩌면 사랑만큼이나 미움의 감정도, 엄마와 내가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어떤 무게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생각에 이르자 어쩐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