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이따금 말한다. 출근하는 꿈을 꾸는 동안은 기분이 참 좋다고. 꿈을 깬 아침이면 마음이 울적해진다고.
사실 그 꿈이라는 것이, 들어보면 내 입장에선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지는 내용이다. 오랜 숙원을 이뤄냈다거나, 복권당첨이라도 암시하듯 황금돼지나 유명인이 등장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그런 꿈들과는 거리가 멀다.
꿈속에서 엄마는 그저 과거의 어느 날처럼 익숙한 길을 걷고,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는 사무실 공간에 앉아서, 늘 봐왔던 동료들과 함께 몇십 년 간 해왔던 일을 묵묵히 하고 있을 뿐이다. 엄마는 꿈속에서조차 한낱 과거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손꼽아 기다리고, ‘파이어족'으로 살 수 있기를 염원하건만. 엄마는 자신이 몸담았던 일터를, 그 시절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며 현실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 같다.
그건 아마도,
엄마 인생에서 회사에 있었던 시간을 빼고 나면 돌이켜 떠올려보고 싶은 게 그다지 없어서이기도, 회사에 있었던 시간만큼은 평온할 수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엄마와의 대화들을 곱씹어보며 나는 추측한다.
분명 엄마에게도 회사가 마냥 편한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회사는 엄마가 아빠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더 낮아질 것도 없는 자존감이 시시때때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곳.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해 준 귀한 공간.
무엇보다도, 아침에 일어나서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엄마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큰 힘이 돼주었을 것이다.
회사는 결국, 엄마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경제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이었다. 특히, 엄마의 삶에 가장 큰 위협이었던 아빠에게 말이다.
회사에 마음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엄마는 일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일을 하지 않으면 몹시 불안해한다.
힘 빠지고 노쇠해진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순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산다. 노동을, 장성한 자식과 함께 살기 위한 자격의 ‘기본 값’으로 여기는 듯하다.
아빠에게 구속되어 살았던 엄마는, 아빠가 떠난 지금 스스로를 괴롭히는 집요한 생각들을 떨쳐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이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편히 쉴 때,라고 말하는 내게 엄마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눈빛으로,
"몸이 얼른 나아져서 일 좀 하며 살고 싶다. 집안 일 바쁘게 하던 그때가 그리워. 불과 몇 년 전 그때가…."라고 대꾸하곤 한다.
집에서조차 일하던 그때가 그립다니….
엄마에게 일이란 '구속'이 아닌 '숨통'과 같은 역할을 하는 생명줄인가 보다. 그것도 경제적 문제를 초월하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절박한 이유로. 나는 이런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지곤 한다. 좌불안석인 채로 설거지하는 나를, 청소하는 내 모습을 흘끔거리는 엄마를 보며 심란해진다.
때때로 간절한 상상 하나를 붙잡게 된다. 어쩌면 내게 숨통과도 같을 상상을.
밝은 표정으로 일하고 있는 엄마를,
무엇인가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혹은 무엇인가를 지켜내기 위해 일하고 있는 엄마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대상에 빠져있는 엄마를,
엄마의 시선이 사랑하는 책을 읽고, 후각과 미각이 아끼는 커피를 볶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책과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의 사장.
엄마는 멋진 은발의, 성실하고 친절한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