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잠을 앗아간 잔인한 욕심을.
사실, 꽤 좋은 직장을 30년 넘게 다녔던 엄마의 월급만으로도 우리 네 가족이 살기에는 충분했다. 아빠가 끊임없이 사고만 치지 않았다면. 하지만 아빠는 있는 돈을 가만히 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돈으로 끊임없이 큰일을 벌였다. 초밥에 '초'짜도 모르면서 초밥집을 연다고 호기를 부리고, 땅 투자를 한다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노지를 사다 몇십 년을 묵히고, 외진 곳의 팔리지도 않는 아파트를 사들이고 결국엔 생각지도 못한 주식에까지 손을 댔다. 그것도 지인의 꼬임에 홀라당 넘어가서.
기억을 거슬러보면 '한 방'을 향한 아빠의 지극한 충성심은 주택복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게 주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대여섯 살 무렵부터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의 주택복권 구매를 대행했다. 그리고 복권 당첨자가 발표되는 순간, 텔레비전 안의 키 큰 이모들이 쏘는 화살이 숫자로 가득한 과녁에 꽂히는 것을 아빠와 함께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알 수 있었다. 한 발 한 발 쏘는 화살의 심대한 중요성을. 화살이 가리키는 숫자와 종잇조각에 있는 숫자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아빠가 돈을 벌고 기뻐하리라는 것을.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우리 집은 이미 충분히 부자였기 때문이었다.
대여섯 살 무렵의 나는 우리 집 장롱 한구석에 시퍼런 돈다발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 시절 엄마는 월급을 봉투째 현찰로 받아왔는데 그것들을 장롱 한 편에 차곡차곡 모아 보관해 두었고, 이따금 다발을 묶고 있는 띠지를 풀어 손에 침을 묻혀가며 돈을 세곤 했다. 그때 지폐에서 나던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나는 좋았다. 어린 내게는 장난감 돈처럼 생긴 미덥잖은 종이 쪼가리 같은 복권보다 좋은 냄새를 폴폴 풍기며 엄마 손끝에서 찰지게 넘어가던 그 푸르른 녀석들이 훨씬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녀석들을 놔두고 아빠가 굳이 복권에 애끓어하는 게 이상해 보였다.
더 기이했던 점은 그 많던 푸른 다발들이 어느 순간이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거였다.
어여쁜 탑처럼 쌓여가던 지폐들이 사라진 자리는 처연할 만큼 휑해 보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조금 더 큰 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많던 돈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를. 가만히 묵혀두었으면 우리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주었을 그것들은 아빠가 저질렀던 사고를 수습하는데, 빚을 갚는데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몽땅 다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우리 집 기둥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정도의 결정적 한 방은 아빠가 주식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 지금도 여전히 아빠를 주식의 세계로 꼬드겼다는 그 지인을 찾아가 멱살잡이하고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더니, 하필이면 아빠가 주식에 꽂힌 그때가 엄마가 삼십 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는 시기와 겹쳐버렸다.
회사에 몸이 매여있던 엄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자유로웠던 아빠는 평소에도 은행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는데, 그러한 이유로 아빠는 엄마의 통장관리를 맡으며 우리 집 경제권을 쥐고 있었다.
당시 주식에 눈이 뒤집혀있던 아빠는 엄마의 퇴직금이라는, 생애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큰 금액이 엄마의 통장에 찍혔을 때 허황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돈이면 주식에 투자해 어마어마한 돈을 단기간에 벌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평생 로망이었던 빌딩 주인이 되는 기대가 이루어질 거라는 뒤틀린 확신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엄마의 퇴직금으로 아빠가 사들인 주식들은 결국, 그 옛날 푸른 돈다발처럼, 티끌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때 엄마는 목숨 걸고 싸웠어야 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던 아빠에게 맞서서. 아무리 아빠가 두려웠더라도 엄마의 과거를 보상해 주고 미래를 지탱해 주었을 그것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저항했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엄마는 그러지 않았고 이제 엄마에게 남은 건 때때로 북받쳐 올라오는 분노, 회한과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견뎌내기 힘든 불면의 밤들이다.
종종 멍하게 앉아 있는 엄마를 볼 때면 내 안에서 엄마를 가여워하는 보드라운 마음과 나 자신을 위한 뾰족한 의지가 희미한 경계를 지은 채 거칠게 출렁이곤 한다. 그럴 때면 최면을 걸듯 속으로 되뇐다.
‘내 삶은, 바보처럼 자신의 인생을 내어준 엄마의 삶과 다를 것이다!’
‘나는 결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