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간 내가 잘못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다.
폭력을 휘두르던 아빠를 피해 달아나던 엄마가 크게 다치고 난 후, 꽤 오랜 시간 엄마와 아빠는 별거 생활을 했다. 분노에 찬 외가 친척들은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야 마땅하다고 소리를 높였지만, 엄마는 차마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지 못했고, 대신 동생과 나와 함께 외가댁에서 지내기로 결심을 했던 것이다.
사실, 외가댁이라고 해 봐야 그 당시 우리 집에서 직선거리로 채 200미터가 될까 말까 한 위치에 있었다. 아빠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근해 올 수 있는 지척이었다. 물론, 장모님을 위시한 처가 식구들이 - 그때만 해도 이모들이 결혼하기 전이었다 -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엄마 곁에 버티고 있었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충격적인 그날의 기억 때문에 우리는 다시 아빠를 볼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아빠는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채, 가족들이 떠난 집에 홀로 남아 외로이 지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아빠가 걱정되었는지 내게 반찬을 건네주고 오라며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마냥 아기 같기만 한 동생에게 큰 도로 하나를 건너가야 하는 심부름을 미룰 수 없었고, 무엇보다, 외할머니 몰래 내게 부탁을 하던 엄마의 그 처량하고 간절해 보이는 눈빛을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의 눈물을 본 건 그렇게 반찬통을 전해주러 간 자리에서였다.
얼마 전까지 내가 살고 있던 집이었지만 어쩐지 어색했던 나는, 잽싸게 엄마 심부름만 하고 돌아오려 했다.
그런데 보고야 만 것이다. 다 큰 성인 남자가, 그것도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빠가 고개를 떨구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그 장면은 어린 내게, 엄마가 2층에서 뛰어내린 그 순간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놀란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빠를 쳐다보고만 있자, 아빠는 방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종이 뭉치를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그건, 엄마에게 쓴 아빠의 손 편지였다. 4학년인 내가 읽기 버거울 만큼 장문으로 쓰인.
"아빠 요즘 교회 나간다. 얼마 전에는 몇 박 며칠 기도회도 다녀왔어…”
아빠는 교회를 나가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자신의 죄를 깊이 반성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절절한 반성 진즉에 엄마 앞에서 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튼, 아빠가 내게 이렇게 말만 했다면 나는 아마 속으로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의 눈물을, 밤새워 정성스레 쓴 것 같은 손 편지를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맘이 동했다. 아빠가 불쌍해 보였다. 혼자 버려진 채,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편지를 쓰고 있는 아빠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게 사달이었다. 너무도 순진하고 여렸던 내 마음이 이후의 상황을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가버렸다.
나는 그 이후로 엄마의 반찬통을, 아빠의 손 편지를 전해주며 엄마 아빠의 전령사 노릇을 했다. 나보다 (훨씬) 더 아빠를 측은히 여겼을 못난 엄마는,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이따금 밖에서 아빠를 만났다. 심지어 둘의 비밀데이트(?) 사진까지 찍어 남겨 놓았다. 나는 한 술 더 떠, ‘내가 아빠 곁에 같이 있어주겠’노라 말하며 엄마를 다독였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뒤엎어버리고 싶은 결정이다).
나는 그렇게 시작한 아빠와 둘만의 동거를 일 년 가까운 기간 동안 이어갔다. 충실한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요리할 줄 모르는 아빠 덕분에 스스로 계란프라이를 하고, 학교 도시락을 싸고, 미역국을 끓이는 초등(국민) 학생이 되었다. 철저히 버림받아야 마땅했을 아빠가 엄마와 재결합하는 데에 한몫을 했다. 그놈의 빌어먹을 눈물 한 줄기, 손 편지 몇 장 때문에 평온해졌을지도 모를 우리 가족의 인생을 다시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짓을 내가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따금 소용없는 가정을 해보곤 한다.
그때의 내가, 아빠의 눈물 섞인 편지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엄마의 삶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내가 아빠에게 품고 있는 미움과 원망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이 마음을 저만치 떠나보낸 채 살아가고 있진 않았을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