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단 한 가지, 내가 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다.
엄마를 통해 여러 차례 들었던 사실이다. 불만 섞인 푸념을 통해.
엄마는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얼마나 섭섭하던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당연히 엄마의 얘기를 듣고 그 '푸대접'의 당사자인 나는 섭섭함을 넘어 분개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첫 아이가 태어났는데 딸이라는 이유로 얼굴 한번 보러 오지 않았다는 사람을 아빠라고 불러도 될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출생과 동시에 아빠로부터 남녀 차별의 설움을 겪은 나였지만 성장 과정에서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아빠는 지극히 성과 중심적인 사람이었고 남동생에 비해 학교 성적이 훨씬 좋았던 나를 '성공적인 생산물' 내지는 '내보이기 좋은 자식' 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반면, 출생과 동시에 환영받았던 동생은 거꾸로 차별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그런데 아빠가 요양병원에 들어가고 세상을 떠난 이후, 나는 엄마를 통해 '태생적 남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마치 엄마가 아빠의 빈자리로 인한 공백만큼 더 톡톡히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에게 느꼈던 이상의 분노가 일곤 한다. 같은 여자로서 배신감이 더 든다고나 할까.
나를 보러 오지 않은 아빠를 비난하던 엄마를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남녀 차별주의자였다니!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내가 싫어하는 그 표현을 엄마로 인해 떠올리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아빠의 남녀 차별은 성과에 기반해 바뀔 수도 있는 '변화 가능한 태도' 였다면 엄마의 남녀 차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에 대한 '무조건적 차별'에 가깝다. 내가 노력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닌. 사실 그런 노력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물론, 같은 여자로서 내가 더 편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일 수 있다.
때때로 엄마가 남동생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조심스러워 보이는데, 거기엔 약간의 두려움과 '격의' 같은 게 담겨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마가 내게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결국 엄마와 함께 살아갈 사람은, 감추고 싶은 속내도 털어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상은 나인데 말이다.
엄마는 동생에게 화를 내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막상 동생 앞에서는 제대로 본인의 마음을 표출하지 못한다. 되려 당사자도 아닌 내 앞에서 격앙된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이곤 한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 일로 융단폭격을 맞고 나면 처음엔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온다.
그러다 뒤늦게야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른다. 때로는 그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와 주체하기 힘들 지경이 된다.
한 예를 들자면, 몇 년 전 동생이 내 생일을 축하하며 가족들과 함께 먹으라고 배달 음식을 거하게(?) 보내온 적이 있다.
사실 다섯 식구가 먹는 것치고 '거하다'라고 말하기엔 다소 부족해 보이는, 6만 원 상당의 음식이었다.
1년에 단 한 번 있는 생일, 형제라고는 단둘. 나보다 돈 잘 버는 동생이 - 경제력은 역시 학교 성적과 비례하지 않는다 - 보내준 산해진미를 난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었나 보다.
음식을 담은 용기에 붙어있던 6만 원 - 60만 원, 600만 원도 아닌! - 영수 금액이 엄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돈 앞에서 절절매는 못난 엄마의 모습을 불러일으키고야 말았다.
영수증을 확인한 엄마는 목소리를 점점 높이다 급기야는 내 앞에서 분을 토해냈다.
굳이 뭐 이런 걸 보냈냐부터 시작해서, 쓸데없이 큰돈을 썼다, 왜 돈 아낄 줄 모르냐 등등...
‘쓸데없다’는 말에 내 마음속 무엇인가가 팡, 터져 버렸다. 내 생일선물이 쓸데없다니...!!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생일이었다. 타인들에게는 점점 잊혀가는 나의 생일.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이렇게라도 챙겨주겠다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는커녕, 돈 쓴 당사자는 없는 자리에서 생일 당사자인 내게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억울했다. 엄마보다 내가 더 분했다. 그런데 더 억울한 상황은 나중에 따라왔다.
엄마는 '돈을 아낄 줄 모른다'던 동생 앞에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그 이후로 그에 관해 동생에게는 일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동생에게는 그저 차분하고 한결같은 엄마였다.
나는 돈 한 푼 쓰지 않고도, 동생을 대신해, 생일날 미역국 대신 엄마에게서 '돈 아낄 줄 모른다'는 질타를 한참 동안 들어먹어야만 했다.
그날 결국 나도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다른 건 참아도 남녀 차별적 태도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내 ‘태생적 분노 버튼’과도 같았다.
아빠가 없는 지금, 내가 딸로 태어난 것은 오롯이 엄마의 덕이지 내 책임은 1도 없는 것인데,
나는 평생을 딸로 살았고 앞으로 죽는 날까지 딸 가진 엄마로서 살아갈 건데...
엄마처럼 이렇게는 살지 않으리라, 다시 한번 이 악물고 다짐했다.
다른 날도 아닌 내 생일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