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사랑이 필요하다

by 지뉴
엄마는 좋아해 본 남자 없었어?


내가 물었다. 질문에 대한 엄마의 답이 당연히 아빠는 아닐 거라 확신하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생 한 번쯤은 가슴 시리고도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갈구하게 되지 않을까.

서로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긋난 짝사랑이든 천운이 닿아 둘의 마음이 합치되는 '온사랑'이든 간에.



그러나 내가 보는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사람 같았다.

불현듯 궁금해졌다. 엄마에게도 그런 마음이, 바람이 일었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엄마가 말했다.


“좋아해 본 적은 없는 것 같고, 약간의 호감 정도 가져본 사람은 있었어."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아해 본 이성 하나 없었다니, 같은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엄마의 인생이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사람인데, 애절하게 사랑도 해보고 싶고 그러지 않아?"

“그렇지... 다시 태어나면 그런 사랑해보고 싶다, 생각은 하지."


내 두 번째 질문에 엄마는 생각하느라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역시 그랬다. 엄마도 나와 같은 여자였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행하게도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것뿐이었다.



엄마는 의처증이 심했던 아빠로 인해 길에서 스쳐가던 눈빛 하나에도 매사 조심해야 했다.

친구들 간의 모임은 물론이고 회사 동료와의 회식 자리마저도 엄마에겐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엄마 인생에서 회사와 집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사치'의 영역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어떤 형태로든 이성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인생을 통틀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그것도 나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엄마는 이성을 향한 호감을 수줍게 표현할 뿐이었다. 그것도 순식간에 스치듯 지나가는 말이라, 자칫 엄마의 낯선 표정과 말투에 녹아있는 묘한 뉘앙스를 놓치기 십상이었다.



내 자취방으로 올라오던 길, 기차 옆좌석에 앉았던 노신사가 친절했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설렘이 녹아있는 듯했고,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송재호'의 역할들이 참 멋지다고 말하는 엄마의 눈빛에 낯선 생기가 반짝였다. 그 순간의 엄마는 설레는 마음을 애써 숨기려 하는 여고생 같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엄마를 보면, 아무리 별것 없는 인생이라지만 미소 지으며 떠올릴만한 애틋한 마음의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엄마 인생의 마지막이 억울하지 않기를 바라는 나는, 엄마가 이상형에 가까운, 학자풍의 멋진 노신사와 함께 애틋한 마음을 나누기를 고대한다. 제발, 그렇게, ‘사랑바람’이라도 나면 좋겠다.

굳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다음 생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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