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위한 짧은 변(辨)

그럼에도...

by 지뉴

엄마 인생을 망친 당사자인 아빠에게도 나름의 사연은 있었다.

아빠가 거쳐온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며 아빠를 이해해보려고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망하고 있는 엄마의 인생 이야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아빠는 곧잘 선을 훌쩍 넘어와 우리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 속에 매번 악당처럼 등장하는 아빠를 위해서도 작은 공간은 남겨주어야겠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변명할 기회는 주는 법이니까.

내 안 어딘가에 남아있을, 아빠를 향한 눈곱만큼의 애정을 위한 배려이기도 할 테고.




아빠는 바람둥이에다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무서웠던 할아버지와, 세상 순하고 착했지만 생활력이라고는 없었던 할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귀한 대접을 받으며 성장했다.

문제는, 아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좋지 못한 점을 골고루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할머니의 착한 성정이 아니라, 불운하게도 할아버지의 불같은 성질과 할머니의 무능력함을. 거기서부터, 아마도 선천적으로, 아빠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아빠에게는 재주가 하나 있었다. 아빠는 '공부 머리'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 당시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문이었던 '경* 고등학교'의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는 친척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아빠의 주장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아빠는 그 시절 신분 상승의 확실한 사다리가 되어 줄 자신의 재능에 모든 것을 건 채,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나아질 것 없던 하루하루의 현실을 버텼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리라는 희망을 붙잡고. 하지만 그건 아빠 인생의 ‘희망고문’이 되어버렸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아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공염불과도 같았다.

하필이면 아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빠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 결정적 상황이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진 것이다. (아빠를 보며 내가 ‘당신은 원래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목숨 걸 각오로 무엇이든 했을 사람이었지만, - 아빠는 당신의 어머니보다 장모님인 외할머니를 더 따르고 좋아했다- 가계를 꾸려나갈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친할머니는 그저 손 놓고 스러져가는 집을 구경만 했다고 한다.

명문 대학에 들어가서 법조인이 되고 싶었던 아빠의 오랜 꿈은 결국 경제적 이유로 인해 순식간에 좌절되었다. 그 이후로 할머니에 대한 아빠의 증오심이 점점 커져갔던 것으로 보인다. 아빠에게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었던 셈이니까.



성인이 된 아빠가 세상을 대하는 - 특히 이성에 대한 - 비뚤어진 태도에는 분명 아빠가 성장기 시절 겪었던 크나큰 좌절감과 패배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아빠의 시야에 엄마가 들어왔던 것이다. 꽤 괜찮은 외모에 경제력을 갖추고 있던 엄마가. 거기에다 남성에게 순종적일 것 같은 성격과, 적극적으로 아빠의 편이기를 자처하는 미래의 장모님까지. 어쩌면 그 당시 엄마는 아빠에게 '놓치지 말아야 할 인생의 기회'처럼 비쳤을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 엄마 아빠의 궁합을 봐준 점쟁이 말에 의하면 아빠는 나무, 엄마는 그 나무가 빨아들이는 물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점쟁이의 말처럼 엄마는 오랜 시간 아빠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과 영양분' 같은 역할을 하며 살아왔다.



할머니의 무능함으로 인해 인생의 꿈과 희망이 꺾였다고 생각했던 아빠는 결혼을 한 이후에도 할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미움의 크기가 얼마나 컸던지 어린 내 눈에도 할머니를 향한 아빠의 날 선 감정이 고스란히 들여다 보일 정도였다.

아빠는 스스로도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우리 가족의 삶을 통째로 흔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따뜻하고 든든한 아빠이자 남편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가족들의 하나뿐인 가장이었다.

그런 아빠가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빠를, 엄마가 걸어온 삶을 미워하게 만들었다. 그 어떤 화해나 용서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잔인하도록 무책임하게.

이런 아빠를, 일상 속으로 불쑥불쑥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오는 기억들을 남은 우리는 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만큼 스스로를 갉아먹는 감정도 없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아빠를 용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보란 듯이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용서 따위 하지 않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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