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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Sep 20. 2024

와글와글 옐로탱

하와이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스노클링이었다.

하지만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해변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하와이에서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마침내 선택한 곳 투스텝비치(Two Step Beach). 두 걸음만 나아가면 어느 곳에서나 물고기로 가득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하여 붙여졌다는 매력적인 이름.

그 이름을 가만히 읊조리기만 해도, 마치 수백 마리의 열대어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지 월마트에서 구입한, 합리적 가격(reasonable price)의 스노클링 장비를 옆에 끼고, 둥실 떠오르는 마음을 머리에 인 채로 '우리의 니모들'을 만나기 위해 투스텝비치로 향했다.



이렇게 말하려니 내가 수영을 곧잘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사실 나는 간신히 물에 뜬 채로 발만 파닥거리는, 헤엄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정도의 실력밖에 갖추지 못한 인간이다. 실컷 앞으로 전진했다고 생각해서 뒤를 돌아보면 겨우 내 키만큼 나아가 있는 허무한 움직임이, 물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다. 대학 시절 몇 달간 기초수영을 배운 적이 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 익힌 감각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물과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는 처지인지라, 깊이를 즉각적으로 가늠할 수 없는, 발이 닿지 않는 정도의 물은 내게 공포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바다 관련 물놀이는 내게 ‘간접체험’의 대상이다. 이번 하와이 여행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짝꿍과 아들 녀석이 스노클링을 즐기는 동안, 나는 짐꾼을 자처하며 부자가 노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으로 대리만족해야 했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분 중 이쯤에서, '그럼 딸내미는 어디에...?'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세심한 관찰력을 지닌 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자가 바닷속을 유영하고, 내가 바닷속을 유영하는 두 남자를 바닷가에서 구경하고 있을 때, 사춘기 딸은 인근 주차장에서 하와이의 이름 모를 새들과 노닐고 있었다. 그랬다. 사춘기 딸은 주차장 바깥으로조차 걸어 나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척에 빅아일랜드의 바다를 두고서도. 사람이라고는 주차장(주차비는 현금 5달러였다)을 관리하는 건지, 낮잠을 즐기는 건지 알 수 없는, 하와이안 배불뚝이 아저씨밖에 없는 허름한 곳에서 말이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사춘기 딸은 물가에 끌고 가는 것부터가 부모인 우리 능력 밖에 있는 일이다. 결국 우리 네 식구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성별을 기준으로 육지와 바다로 나뉘어, 그날의 일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겼다. 거기에 어쭙잖은 강요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흐린 하늘에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그리며 간 '투스텝비치'였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건, 그날의 하늘을 닮은 회색빛에, 출렁이는 파도가 스노클링을 하기에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바다였다. 그러나 그 불리한 여건이 사람들의 열의를 꺾지는 못했던지, 꽤 많은 이들이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었다. 수많은 열대어를 봤다고 감탄하는 이, 거북이와 함께 수영을 했다는 이, 바닷속 사진을 찍어왔다는 이들까지... 곁에서 귀동냥으로 듣고 있자니, 호기심이 피어오르는 동시에 부러운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내가 짐을 든 채로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해변가 바위 위를 오가고 있던 사이, 짝꿍이 제일 먼저, 그다음 아들 녀석이 차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집 근처 수영장에서 3년 넘게 수영을 배워오고 있는 짝꿍은 처음 도전하는 바다 수영에 몹시 들떠있었는데, 투스텝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바다 수영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드는 모양이었다.



  "여기 장난 아니야!! 잠시 쳐다봤을 뿐인데도 수십 마리의 열대어들이 시야 한가득 들어오더라."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말하는 짝꿍의 목소리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정~말?!"

그 순간의 짝꿍이, 내가 그를 알아온, 수 많았던 나날들의 '그'의 모습 중 가장 부러웠다. 열대어들을 본 짝꿍의 눈을 빌릴 수만 있다면 나는 분명 그리 했을 것이다.



짝꿍보다 수영이 다소 서툰 아들 녀석은, 합리적 가격이라고 생각했던 저렴한 장비빨 때문인지(스노클링 장비는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것을 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기대한 만큼 스노클링을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지만, 바닷속 찰나의 풍경을 감상했음에도 함박웃음을 입에 건 채 뭍으로 올라왔다. 아들 녀석의 들뜬 표정을 마주하고 있자니 아쉬운 마음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그러던 차에 '그 녀석들'이 내 시야에 잡힌 것이다.



처음 녀석들을 봤던 순간, 수면 아래에 수선화처럼 노란 바다꽃들이 한들한들, 부유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것이 물고기 떼라고는 짐작조차 못했기에. 그런데 자세히, 짧지 않은 시간 시선을 내어주고 있자니, 물결 아래 살랑이던 그것들이 빛깔도 샛노란 물고기 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름하여 '옐로탱'. 녀석들은 헤엄칠 생각도, 바다 쪽으로 나아갈 생각도 없이, 그저 밀려들고 나가는 파도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려는데 내 귓가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야!! 신난다아~~!!!'

'이번에는 바위 위로 더 높이 올라가자!!'

'좋아! 와아아아~~~~~'

'얘들아, 이번 파도에 올라 타!!!'


출렁, 파도와 함께 황금돌멩이들이 바위 위로 와르르, 몰려 올라오는 것 같았다. 팔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두 손 가득 노랗게 물이 들 것 같았다. 녀석들은 거의 하루종일 이곳에서, 아주 재미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신이 난 녀석들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외칠 것만 같았다. 이리 와서 우리와 함께 놀자고. 파도에 몸을 싣고 바위 곁에서 노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이 세상에 없다고. 인간이 파도를 타며 서핑을 즐기는 것처럼, 우리도 파도의 움직임을 즐기고 있는 거라고.



불현듯 현실에서 니모를 만난 것처럼 두 눈과 가슴이 활짝 열렸다.

  ‘어머, 이건 꼭 영상으로 촬영해야 해!’

두 남자의 짐을 어깨에, 허리춤에 둘러멘 나는, 어정쩡한 포즈를 취한 채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장면이 아래에 첨부한 동영상이다. 오래도록 담고 싶은 광경이었지만, 카메라 안으로 들이닥친 한 여인 때문에 아쉽게도 그만 정지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고 있던 사이, 스노클링을 마치고 육지로 올라온 짝꿍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보다 바다 수영이 잘 되네. 앞으로 쭉~쭉 나가지더라고.”

아마도 그 순간의 짝꿍은,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자기의 실력에 감탄하는 내가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금 미안하게도, 당시 나의 관심은 온통 황금빛 옐로탱에게 가 있었다.


"바닷속에도 옐로탱 많아?"

"응, 많았지. 근데 그건 왜?"

"이야! 장관이었겠다!!"


바닷속 보물처럼 빛을 발하고 있을 옐로탱들을 상상해 보자니, 그 옆을 유영하고 있을 내 모습이 함께 그려졌다.

그래, 언젠가는 와글와글 옐로탱들과 함께 노닐어 보리라.

녀석들처럼 오롯이 파도에 내 몸을 싣고서.

'와아아아~~' 신나게 소리를 내지르며.

그 시각 딸의 시선
이제 슬슬 스노클링을 시작해 볼까?
태평양과 인도양에 서식하는 옐로탱
그 시각 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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