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한 지 8년 차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임금이 밀려서 갑자기 사람들이 나가게 되었다. 나는 다른 회사에 파견 근무 중에 소식을 들었다. 상사는 같이 사표를 내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다른 회사와 같이 프로젝트 수행 중이라 그만두게 되면 책임을 회피하게 되어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상사는 화가 난 듯이 뭐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얼떨결에 나는 아직 직급은 과장인데, 직책은 팀장이 되었다. 사장 바로 아래 자리다 보니 부담이 컸다. 특히 나와 남은 2~3명의 직원을 잘 다독여야 했다. 같이 그만두게 되면 돌아가는 프로젝트 모두가 엉켜 버리기 때문에 사람을 잘 관리하는 일도 팀장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가끔 일로 힘들어하면 나는 팀원들과 저녁 자리를 함께 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듣기도 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사적인 이야기도 가끔 하게 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 여자친구는 있냐?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냐? 등의 질문과 함께 오고 가는 술 한 잔으로 점점 분위기는 편해진다. 취기가 올라오게 되면 나는 팀원들에게 편한 형이라고 생각하라고 소리친다. 형이라고 불러! 이러면서.
자리를 파하고 다음 날 아침이다. 팀원 중 한 명이 갑자기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다가온다. 그 순간 나는 ‘뭐지?’라고 그를 쳐다본다. 해맑은 미소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나도 모르게 “형님이 뭐냐? 회사에서 직급으로 호칭해야지.”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네, 죄송합니다. 과장님. 어제 형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하셔서.”
아차 싶었다. 보통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공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 그 후배도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윗사람이 하라고 하면 당연히 그렇게 따라야 한다고 그가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회사에서 직급, 밖에서는 얼마든지 형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하면서 마무리했다.
돌아가는 그를 보면서 내가 아무래도 실수했다. 아무리 사람을 좋아하고 그 후배가 업무로 힘들다고 해도 관계 정립을 처음부터 확실히 해야 했다. 회사에서 만났으면 일을 같이 합심하여 잘 끝날 수 있게 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다. 놀기 위해 회사에 온 것이 아니다. 아무리 상사와 허물없이 지낸다고 해도 공적인 관계는 지키면서 사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어떤 관계든 선을 넘는 순간 모든 관계가 무너진다.
그 이후 나는 회사에서 아랫사람이나 윗사람에게 업무상 중요한 일정이나 진행 상황 등만 이야기했다. 회식이나 가끔 있는 저녁 식사 등에서도 사적인 이야기는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말이 많다 보니 실수한 적도 있다. 이렇게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사적으로 가까워질수록 더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비밀이나 솔직한 이야기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면 괜찮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도 좋지 않다. 그들을 제외하고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다. 그 사이에 공간을 주어야 각자의 프라이버시 가 존중될 수 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 않은 관계가 가장 좋다. 친하게 될수록 경험해보니 갈등이 커진다. 균형을 잘 유지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오래갈 수 있다.
올해 새로 옮긴 회사나 운영 중인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웬만하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너무 친해지면 아무래도 그동안 쌓아온 친밀한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가 되면 사실 매몰차게 먼저 끊어내기도 한다. 예전부터 너무 가까워질수록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생긴 나만의 방어기제다.
혹시 관계로 고통받고 있다면 너무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지 살펴보자. 거듭 말하지만,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해야 한다. 나부터 챙기고 나서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첫 번째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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