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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연락처 정리를 통해 정리되는 마음

by 황상열

“와,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이 2,000명이나 있어?”

오늘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문자 확인하다가 우연히 내 연락처 명단을 보게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중에 내가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집에 와서 노트를 펼치고 한번 적었다. 사실 그렇게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나마 자주 연락하는 지인이나 친구 이름을 적었더니 10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연락처가 많이 저장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글쓰기/책 쓰기 강의와 독서 모임을 약 5년 정도 진행하고 있다. 무료 강의까지 포함하면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내 강의를 들었다. 코로나 시절이라 오프라인 강의보다 온라인 줌 화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신청하려면 연락처가 필요하다. 그때 받았던 연락처를 하나씩 저장하다 보니 숫자가 천 단위까지 늘었던 이유다.


2~3년마다 스마트폰을 바꿀 때마다 늘 하는 일이 있다. 연락처 정리. 2,000개 넘는 이름들이 스크롤 속에 가득하다. 어떤 이름은 이제 얼굴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번호는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그 사람과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게 몇 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우지 못하고 남겨둔 이름들이 있다.


그 당시엔 분명 소중한 사이였을 텐데, 지금은 왜 이렇게 먼 사람처럼 느껴지는 걸까? 왜 이렇게 연락을 잘하지 못했을까? 먹고 사는 게 바빠서 그랬을까? 다 핑계고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냥 만날 생각이 없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다 보니 이제 관계에 대해서도 더 이상 미련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1년 정도 연락한 사람은 내 기준에서 괜찮다. 또 연락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고 편하게 받아주는 사람도 좋다. 그런 사람들을 제외하고 연락처를 정리하다 보면 마음도 함께 정리된다.


한때는 자주 통화하던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일 먼저 연락하던 사람. 매일 대화하던 그 시절이 있었지만 서로의 삶이 달라지고, 우선순위가 바뀌고, 그렇게 멀어졌다. 2030 시절에는 그렇게 지지고 볶고 함께 다니면서 죽고 못 살았는데, 시간이 흐르니 이젠 연락하는 것 조차 두렵고 무의미하다.


이제는 내 소식도, 그의 근황도 알 길이 없는 사이. 그렇다고 원망이나 미움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서로의 계절이 지나간 것이다. 가끔은 이름 하나를 지우는 것이 추억을 지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은 마음에 남는 것이지, 기기에 남겨두는 게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연락처 속 오래된 이름을 지워도, 그 사람이 나와 함께했던 순간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때로는 내가 먼저 정리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기대나 미련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을 사람,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을 사람,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거리를 둬야 할 사람들. 그들을 조용히 내 폰에서 보내주는 일이 중년의 인간관계다. 중년의 인간관계는 더하는 게 아니라 이제 빼기다. 이미 있는 사람과도 시간 보내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진짜 친한 사람조차 1년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들다.


그건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이별 의식인지 모른다. 정리하고 나면 생각보다 마음이 가볍다. 소중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아도 그 소수 사람과 더 진심으로 연결되고 싶어진다. 관계란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남아주는가에 대한 이야기니까. 오늘, 다시 연락처를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나를 정리한다. 지우는 손끝마다, 조금씩 더 단단해진 마음이 따라온다.


오십이 가까워지니 이제 나부터 챙기는 게 우선이다. 내가 편해야 이미 남아있는 소수 사람에게도 잘 할 수 있으니.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면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를 살펴보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당신의 마음에서 이미 떠났을 것이다. 비워야 채워지듯이 연락처 다이어트도 실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매일 쓰는 사람이 진짜 작가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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