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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 그게 친구다.

by 황상열


“선배님, 13학번 000입니다.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반가워요. 저는 97학번 황상열입니다. 여기 온 사람 중에 나이가 많은 쪽이네요. 이런 곳에 와도 되는지. 무슨 일하세요? 아, 제 명함 드릴게요. 저는....”


요즘 따라 말이 많아졌다. 이미 내 동기들은 다 집에 일찍 갔다. 나 혼자 남았다. 물론 내 위로 95, 96학번 선배들과 98~02학번 후배들도 보인다. 많지 않다. 오랜만에 만나니 사실 예전에 친했어도 좀 어색하다. 그래도 20대 시절을 함께 보낸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어떻게든 비집고 앉아서 같이 이야기 나눠본다.


괜찮은 척,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쓰다 보니 하루 종일 입으로 감정을 포장하게 된다. 속으로는 울고 있는데, 겉으로는 웃는 사람처럼. 분위기는 좋지만 그래도 그 자리가 편안하거나 즐겁지는 않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다. 오래된 친구다. 예전에는 참 많았지만, 지천명을 바라보는 중년이 된 지금은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 그래도 행복하다. 그런 사람이 2~3명 정도는 있으니 말이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9일 오후 10_17_22.png

말이 없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사람. 요즘은 자주 연락하진 못하지만, 내가 힘들 때면 이상하리만치 타이밍 좋게 연락이 오는 사람이다. “야, 잘 지내냐?” 그 한마디에 어딘가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오랜만인데도 왜 눈물이 핑 도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했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그냥 같은 자리에 앉았고, 비슷한 취향으로 웃었다. 아무 말 없이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던 사람. 그렇게 조용히 곁을 지켜주던 친구는, 내 인생의 몇몇 중요한 순간마다 꼭 나타났다. 이직을 고민하던 밤, 내가 아파서 입원하여 허탈하게 누워 있던 날, 그리고 아무도 몰랐던 내 생일에 “축하한다. 아이들하고 케이크라도 먹어라.” 라는 문자를 보내온 날까지.


그 친구와의 대화는 늘 짧았다. 긴 설명도, 화려한 위로도 없다. 하지만 묘하게 위안이 된다. "그냥 너라서." 그 말이 전부인 사람. 아무 말 없이 내 감정을 읽어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말보다 더 깊은 언어가 통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일지 모른다.


자주 만나지 못해 미안하다. 얼마 전에도 늦은 밤 전화가 왔다. 별말이 없다. 요새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데, 넌 괜찮냐고 담담하게 물어본다. 그렇게 물어주는 친구 한마디에 울컥한다. 갱년기인가?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그의 감정을 알고 있기에 “괜찮다.” 한마디로 짧게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살다 보면 설명해야 할 관계가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다. 전자는 노력으로 유지되지만, 후자는 온기로 이어진다.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고, 몇 마디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는 사람이다. 말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 그게 친구다.


요즘은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수백 명의 연락처보다, 단 한 명의 진심. 아무 말 없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나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것 아닐까.

오늘은 그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고맙다, 네가 있어서.”


매일 쓰는 사람이 진짜 작가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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