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생겨나고, 자라나고, 사라진다

by 황상열

폭우가 쏟아지다가 잠시 날이 갠 토요일 오후, 머리가 아파서 잠시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작은 동네 서점이 있다. 잠시 들어가 무슨 책이 있는지 한번 구경하기로 했다. 인문학과 철학책 코너로 가서 한 권을 집어들고 서서 읽기 시작했다. 요새 머리가 아프면 무작정 책을 들고 읽는다.

철학자 세네카에 관한 책이었다. 읽다가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을 같이 작은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었다. “모든 것은 생겨나고, 자라나고, 사라진다.” 보통 때 같았으면 그냥 지나갈 문구인데, 자꾸 곱씹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잠시 왜 그런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겨나는 것은 다른 말로 태어난다, 생성의 의미다. 자라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성장의 의미다. 사라진다는 말은 소멸이다. 인생의 사이클이다. 태어나고 자라나고 사라지는 것. 인생의 어떠한 형태든 이 사이클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생겨나고 자라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식하기 시작했다.

업무, 관계 등뿐만 아니라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원하지 않다, 생각만큼 타인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1~2년을 아무리 친하게 지냈더라도 내일이면 관계가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이번에 확실하게 느꼈다. 커뮤니티도 처음 만드는 점이 생성, 유지하면서 조직을 키우는 점이 성장, 언젠가 끝나게 될 사라지는 점이 소멸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인연이 되어 만나는 게 관계의 생성이다. 같이 알아가면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점이 성장이다.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자라난다. 평생 가는 관계도 있지만, 사라지는 관계가 더 많다. 인생에 오는 인연. 기회 등은 예고 없이 혹은 나도 모르게 기다렸던 것처럼 생겨난다.


어제 책을 덮고 서점을 나와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고 거울을 봤다. 낯설지 않은 얼굴인데, 분명히 예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얼굴 곳곳에 잔주름이, 마음 한구석에는 오래된 기억들이 계속 남았다. 재작년 2023년 초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오래 갈 것 같았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긴 지인이나 친구, 갑작스러운 실직, 방심하다가 한순간에 날린 돈... 사라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손을 씻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팠던 머리가 잠시 괜찮아졌다. 사라진다는 점이 꼭 나쁘게 볼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기에 비워야 다른 것들로 채울 수 있다. 사라지고 떠난 것들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호불호가 있는 성격이다 보니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또 딱히 먼저 연락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외롭지만, 마음은 더 편해졌다.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도 이제 한계가 있다. 이제 나에게 무의미한 만남이나 쓸데없는 스케줄 등은 피하고 있다. 회사 업무를 제외하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이제 몰두하는 중이다.


인연도, 꿈도, 나 자신도 변하고 흔들리고 멀어지지만, 어딘가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자라나다가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면 비워진다. 비워진 공간에 다른 것이 생성되어 채워진다. 생성된 것이 자라나면서 넘치면 다시 사라진다.


나는 이 사실을 중년이 돼서야 받아들였다. 이미 떠난 것은 잊는다. 놓아야 채워진다. 멈춰야 들린다. 비워야 진짜 내가 보인다. 책이나 어른들의 말씀이 왜 진리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 삶에 부딪히면서 스스로 터득한 지혜이자 통찰이다. 반 백살 가까이 살아야 나도 그 지혜를 얻는 느낌이다.


그저 내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고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그저 모든 것은 생성과 성장, 소멸의 반복이다. 중년에 오는 것은 축복이다. 자라는 것은 과정이고, 사라지는 것은 완성이라는 것. 중년의 나이에 가장 중요한 점은 오래 붙잡는 것이 아니라 제 타이밍에 떠나보내고 자신의 성장에만 집중하면 된다. 오늘도 나의 글은 생성되고, 지나가며, 사라질 것이다.


매일 쓰는 사람이 진짜 작가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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